[PEDIEN] 15억 초과 주담대 한도 차등 규제가 시행된 지 아홉 달째, 서울 초고가 주택시장은 대출로 사는 시장과 현금으로 사는 시장으로 완연히 갈라졌다. 본지가 지난해 10·15 대책 전후의 서울 아파트 실거래 흐름과 매물·가격 통계를 교차 분석한 결과, 25억원을 넘는 초고가 구간에서 대출한도가 2억원으로 묶이자 이 구간의 거래는 눈에 띄게 얇아졌고, 사실상 자기자금이 없으면 발을 들이기 어려운 '현금 리그'로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15억원 이하 구간은 상대적으로 규제 강도가 덜해 거래가 쏠렸다. 같은 규제가 가격대별로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15일 발표하고 이튿날부터 시행한 대책의 핵심은 수도권·규제지역 주택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의 한도를 집값 구간별로 쪼갠 것이다.
시가 15억원 이하는 종전과 같은 6억원을 유지하되,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는 4억원, 25억원 초과는 2억원으로 조였다.
비쌀수록 빌릴 수 있는 절대금액이 오히려 줄어드는 역진적 구조다.
여기에 수도권·규제지역 주담대에 적용하는 스트레스 금리를 1.5%에서 3%로 끌어올렸고, 열흘 뒤인 10월 29일부터는 1주택자가 규제지역에서 받는 전세대출 이자까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얹기 시작했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것도 같은 흐름이다.
15억 초과 주담대 한도 차등, 규제 전과 후는 어떻게 달라졌나
변경 전까지 고가주택 규제의 상징은 '15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 금지'였다. 2019년 12·16 대책으로 도입된 이 초강수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규제였다가 이후 단계적으로 풀렸다.
그 자리를 이번에 들어선 것이 '금지'가 아니라 '차등'이다.
완전히 막는 대신 가격이 오를수록 대출 여력을 계단식으로 줄여, 실질적으로는 초고가일수록 현금 비중을 강제하는 방식이다.
규제의 문법이 바뀐 것이다. 25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종전엔 6억~9억원까지 대출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2억원이 상한이라 나머지 23억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시장에서 "현금 여력 없이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말이 도는 배경이다.

숫자로 보면 변화는 더 선명하다.
서울 아파트 매물은 대책 직전 9월 말 7만8000여 건에서 올해 1월 말 5만7000여 건으로 넉 달 새 약 27% 급감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전면 지정으로 갭투자성 매물이 잠긴 영향이 크다.
상위 20%(5분위) 아파트 평균가격 추이도 시사적이다.
이 구간은 2024년 8월 25억8000만원에서 지난해 12월 34억4000만원까지 가파르게 뛰었으나, 올해 2월 34억7000만원에서 고점을 찍은 뒤 5월 34억4000만원으로 완만한 조정에 들어갔다.
급등의 관성이 규제선에 부딪혀 처음으로 멈춰 선 지점이 바로 대출한도가 2억원으로 묶인 25억원 안팎 구간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25억 초과 초고가 아파트, 왜 현금거래로 쏠리나
본지 분석의 첫 번째 명제는 이렇다. 25억원 초과 구간의 위축은 수요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대출로 사는 수요'가 걸러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 구간의 매수 주체는 이제 급여 소득을 차곡차곡 모아 대출을 보태는 실수요자가 아니라, 사업체 매각·상속·주식 차익 같은 자본 이동으로 목돈을 쥔 자산가로 좁혀지고 있다. 대출이 2억원뿐이라면 20억~30억원대 거래에서 레버리지의 의미가 사라지고, 결국 거래의 성격 자체가 '자기자본 게임'으로 바뀐다. 실제로 여러 금융권 전망 보고서는 25억원 이상 시장에서 세금 부담이 매도를 억제하고 자산가 수요가 매물 잠김과 맞물려 가격 하방을 떠받치는 구조를 지목한다.
두 번째 명제. 규제는 시장을 셋으로 쪼갰다. 본지가 올해 2~5월 서울 아파트 거래 분포를 살펴보니 전체의 80%대가 15억원 이하 구간에서 발생했다. 규제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6억원 한도 구간으로 거래가 몰린 것이다. 반면 15억~25억원 구간은 대출 4억원에 현금을 얹는 '병행형'으로, 관망세가 짙어졌다. 25억원 초과는 앞서 말한 현금 리그다. 하나의 규제가 세 개의 시장을 만들어냈고, 각 구간의 매수자는 서로 다른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분화는 '똘똘한 한 채' 선호와 결합해 핵심지 안에서도 가격대별 온도차를 키운다.
세 번째 명제는 자금 흐름의 투명성 문제다. 대출이 막힌 자리를 메우는 현금의 출처가 새로운 감시 대상으로 떠올랐다. 올해부터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주택 거래로 확대됐고, 양식도 손봤다. 대출 유형을 세분화하고 금융기관명을 직접 적게 했으며, 부동산 처분대금·주식·채권 등 자기자금 항목도 잘게 나눴다. 대출을 조이면 조일수록 그 빈자리를 채우는 현금의 정체를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규제의 무게중심이 '빌리는 돈'에서 '가진 돈'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홍콩·영국은 고가주택 대출을 어떻게 차등하나
가격대별 대출 차등이 한국만의 실험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을 첫 대출 75%로 두되, 보유 대출 건수가 늘거나 상환기간이 길어지면 비율을 뚝 떨어뜨리는 다층 구조를 오래 운용해 왔고, 여기에 추가구매인지세(ABSD)를 무겁게 얹어 고가·다주택 수요를 눌러 왔다.
홍콩은 금융관리국이 한때 주택 가격이 높을수록 LTV 상한을 낮추는 정통 '가격 연동 차등'을 시행했다가, 시장이 냉각되자 2023~2024년 사이 이를 대폭 완화한 전례가 있다.
규제가 경기 국면에 따라 조였다 풀렸다 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참고가 된다.
영국은 개별 물건값이 아니라 소득 대비 대출(LTI)에 초점을 맞춰, 신규 대출 중 소득의 4.5배를 넘는 고배율 대출 비중을 일정 한도 안으로 제한하는 방식을 택한다.
물건 가격을 겨냥한 한국·싱가포르식과, 차주 소득을 겨냥한 영국식이 대비된다.
세 나라 사례가 던지는 함의는 분명하다.
가격 연동 차등은 초고가 구간을 빠르게 식히는 데는 즉효지만, 부작용도 닮은꼴로 나타난다.
대출이 막힌 최상단이 현금 부자의 무대로 굳어지고, 자산 격차가 오히려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이 규제를 되돌린 경험은 이런 차등 규제가 시장 국면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영국의 소득 기준은 물건값이 아니라 상환능력을 봐야 가계 건전성을 지킬 수 있다는 관점을 각각 일러준다.

취약 차주와 시장의 다음 국면
규제의 그늘도 짚어야 한다.
한도 차등은 초고가 매수자를 겨냥했지만, 정작 충격을 크게 받는 쪽은 15억~25���원 구간에 걸친 '중상위 실수요층'일 수 있다.
자산가처럼 현금이 넉넉하지도, 15억원 이하 구간처럼 대출이 넉넉하지도 않은 이들은 4억원 한도와 3%로 오른 스트레스 금리 사이에 끼여 매수 시점을 계속 미루게 된다.
전세대출 이자까지 DSR에 반영되면서 갈아타기 사다리도 좁아졌다.
상급지로 옮기려던 1주택자의 이동 경로가 막히면, 시장의 순환 자체가 둔해진다.
본지의 결론은 이렇다.
이번 규제는 초고가 거래를 잡는 데는 단기적으로 성공했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 '현금 리그의 고착'이라는 청구서가 딸려 있다.
대출을 조일수록 자기자본 게임이 강화되고, 이는 자산 양극화를 완화하기보다 굳힐 위험을 안는다.
정책 당국에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물건값 기준 차등에 소득·상환능력 기준을 보완해 실수요와 자산가를 정교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둘째, 자금조달계획서 강화가 형식 심사에 그치지 않도록 검증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다.
셋째, 규제의 경기 민감성을 인정하고 시장 국면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설계다.
홍콩의 되돌림이 남긴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규제는 세게 거는 것만큼이나 언제 어떻게 풀지를 미리 설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7월 7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2025년 10월 15일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원문(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 발표자료)에서 15억원 초과 주담대 한도 4억원, 25억원 초과 2억원, 스트레스 금리 3% 상향, 전세대출 이자 DSR 반영 등 핵심 수치를 확인했다. 서울 아파트 매물 감소(9월 말 7만8000여 건→2026년 1월 말 5만7000여 건)와 5분위 아파트 평균가격 추이, 2026년 2~5월 거래의 15억원 이하 쏠림은 KB국민은행·하나금융연구소의 시장 리뷰 및 전망 보고서 등 복수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싱가포르·홍콩·영국의 LTV·LTI 규제는 각국 감독기구의 공개 제도를 근거로 했으며, 세부 수치는 제도 변경 가능성을 고려해 개괄적으로 서술했다. 초고가 현금거래 비중은 공식 단일 통계가 부재해 대출한도·거래분포·자금조달계획서 제도 변화를 종합한 본지의 추정 분석임을 밝힌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