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정비사업 공사비 쇼크가 서울 주택 공급의 시차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로 굳어지고 있다. 본지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건설공사비지수, 서울시 정비사업 소요기간 통계, 국토교통부 주택 인허가·착공 실적, 행정안전부 건물신축가격기준액을 교차 분석한 결과, '공사비'라는 한 단어 뒤에는 서로 다른 네 개의 숫자가 각기 다른 목적과 시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현장을 두고도 어떤 지표는 34% 올랐다 말하고, 어떤 계약서는 64% 뛰었다 적는다. 이 격차가 조합과 시공사의 협상 테이블을 얼어붙게 만들고, 결국 서울에 들어설 새 아파트의 입주 시점을 몇 해씩 뒤로 밀어낸다. 지금 서울의 공급 병목은 땅이 없어서가 아니라, 숫자가 서로 어긋나서 생기는 병목이다.
2026년 상반기 부동산 시장을 흔든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 대형 건설사가 서울 시내 정비사업 현장 여러 곳에 공사비 증액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일부 재개발 구역에서는 3.3㎡당 공사비 제시액이 584만 원에서 959만 원으로 뛰었다.
한 번의 재산정으로 64% 안팎이 오른 셈이다.
조합원들은 "몇 년 전 계약할 때 듣던 숫자가 아니다"라며 반발했지만, 시공사는 "그때 그 숫자로는 삽을 뜰 수 없다"고 맞섰다.
양측 모두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기준의 '공사비'를 각자 붙들고 있었을 뿐이다.
정비사업 공사비 쇼크란 무엇인가 — 같은 '공사비'가 출처마다 다른 이유
먼저 지표부터 갈라 보자.
건설 현장에서 통용되는 '공사비'는 하나의 값이 아니라 최소 네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가 매달 말 발표하는 건설공사비지수다. 2020년을 100으로 놓고 자재·노무·장비 가격의 변동만 추적하는 물가지수로, 2026년 2월 133.69, 3월 134.42를 기록하며 일곱 달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과 비교하면 6년 새 34% 넘게 뛴 것이다.
둘째는 실제 계약 현장에서 오가는 3.3㎡당 시장 단가다.
앞서 본 584만 원 대 959만 원이 여기에 해당하며, 지수가 말하는 34%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률을 보인다.
셋째는 국토교통부가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상한을 정할 때 쓰는 기본형 건축비다.
반기마다 고시되며, 분양가를 계산하는 '천장'의 역할을 한다.
넷째는 행정안전부가 재산세·취득세 등 세금을 매길 때 기준으로 삼는 건물신축가격기준액, 이른바 표준건축비다. 2026년 기준 평당 620만~650만 원 안팎으로, 세금을 매기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값이다 보니 네 지표 가운데 가장 낮다.
정리하면 세금용 표준건축비가 바닥에, 분양가용 기본형 건축비가 그 위에, 현장에서 실제로 오가는 시장 단가가 맨 위에 놓인다.
그리고 이 셋의 등락을 사후적으로 요약하는 물가지수가 건설공사비지수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이 네 지표의 상승 속도는 결코 나란히 움직이지 않는다.
건설공사비지수가 6년간 34% 오르는 동안, 개별 정비사업 현장의 재산정 단가는 50~60% 넘게 뛴 사례가 흔하다.
지수는 전국 평균의 완만한 곡선이지만, 서울 도심 정비사업은 철거·이주·마감재 고급화·지하 굴착 난이도까지 얹혀 평균을 크게 웃도는 까닭이다.
조합이 "지수는 34%밖에 안 올랐는데 왜 60%를 요구하냐"고 물으면, 시공사는 "그 지수는 우리 현장을 담고 있지 않다"고 답한다.
양쪽 다 맞다.
바로 이 측정의 격차가 공사비 갈등의 뿌리다.

격차는 원인 항목별로도 벌어진다.
자재비만 놓고 보면 유가와 환율에 민감한 철근·시멘트·석유화학계 마감재가 중동 정세 불안 때마다 출렁였고, 노무비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인건비 인상과 숙련공 부족이 겹쳐 구조적으로 높아졌다.
지수는 이 모든 항목을 가중평균해 하나의 곡선으로 눌러 담지만, 실제 현장은 그중 어느 한 항목이 유독 튀는 순간 계약 전체가 흔들린다.
평균의 언어와 현장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 이것이 공사비 쇼크를 해석하는 첫 번째 열쇠다.
서울 재건축 준공까지 평균 8.7년, 이 숫자도 출처마다 다르다
공사비만 여러 얼굴을 가진 게 아니다.
'정비사업에 걸리는 시간' 역시 어디서 끊어 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숫자가 나온다.
서울시 자료를 본지가 재구성한 결과, 정비구역 지정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의 계획 단계에 평균 3.65년, 사업시행인가부터 준공까지의 시행 단계에 평균 6.41년이 걸렸다.
두 구간을 합치면 통상 인용되는 '준공까지 평균 8.7년'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최근 6년간 서울의 정비사업이 약 5만5000가구를 실제로 공급했다는 집계도 함께 확인된다.
공급 효과 자체는 분명하다.
문제는 속도다.
그런데 이 8.7년조차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주민들이 재건축·재개발을 처음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 즉 조합 설립을 향한 동의서 징구와 안전진단(현행 재건축진단) 단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실제 체감 소요기간은 15~20년에 달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반대로 구역 지정부터 착공까지만 끊어 보면 과거 평균은 약 14.5년이었다.
같은 사업을 두고 8.7년, 14.5년, 15~20년이라는 세 개의 숫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어느 구간을 재느냐의 문제일 뿐, 어느 하나도 틀린 값이 아니다.
이 시차의 격차는 곧바로 공급 병목으로 번역된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2026년 들어 서울의 주택 인허가는 전년 대비 60%대까지 급감했고, 착공 실적도 크게 꺾였다.
특히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아 놓고도 첫 삽을 뜨지 못한 정비사업 구역이 서울에서만 70곳에 달한다.
인허가라는 서류상 관문을 통과하고도 실제 착공까지 다시 2~3년이 더 걸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류상의 시간과 콘크리트가 올라가는 시간 사이에,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왜 인가를 받고도 멈추는가.
답의 상당 부분이 다시 공사비로 돌아온다.
사업시행인가나 관리처분인가 시점에 산정했던 공사비가 착공 직전 재산정 과정에서 급등하면, 조합원 분담금이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로 튀어 오른다.
조합은 총회를 다시 열어야 하고, 시공사는 물가 반영을 요구하며, 협상이 길어질수록 지수는 또 오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사비가 오르고, 공사비가 오르니 협상이 길어지고, 협상이 길어지니 다시 시간이 흐르는 악순환.
서울의 공급 절벽은 바로 이 되먹임 고리 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정책은 바뀌었다 — 패스트트랙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정부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변경 전과 후'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25년 시행된 도시정비법 개정, 이른바 정비사업 패스트트랙은 절차의 시간표 자체를 다시 짰다.
종전에는 재건축을 시작하려면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했지만, 개정 이후에는 '재건축진단'으로 이름과 성격이 바뀌며 진단을 사업 초기 관문이 아니라 병렬 절차로 돌릴 수 있게 됐다.
사업시행계획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동시에 처리하는 '인가 병행'도 법제화됐다.
종전에 순차적으로 진행돼 1~2년씩 걸리던 두 인가를 묶으면서, 행정 병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동의 요건도 완화됐다.
주택단지 전체 구분소유자와 토지소유자 동의 요건이 각각 70% 수준으로 낮아졌고, 개별법에 따라 따로 받던 건축·경관·교통·환경 심의를 통합심의로 한 번에 처리하도록 바뀌었다.
정부는 이런 조치를 통해 구역 지정부터 착공까지의 기간을 종전 약 14.5년에서 9년 안팎으로 5년가량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서류상의 시간표만 놓고 보면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본지의 결론은 이렇다.
패스트트랙은 '행정의 시간'을 줄였을 뿐, '돈의 시간'은 건드리지 못했다.
인가를 아무리 빨리 내줘도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숫자에 합의하지 못하면 착공은 여전히 멈춘다.
관리처분인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한 서울 70개 구역이 그 증거다.
절차 단축이 곧 공급 확대로 이어지려면, 재산정 공사비의 산정 기준과 검증 절차, 분쟁이 길어지는 동안의 자금 흐름을 지탱할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시간표를 앞당겨도 협상 테이블이 얼어 있으면 결과는 같다.
해외와 비교하면 — 공사비 급등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공사비 충격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다만 대응의 결이 다르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 목재·철강 등 건자재 가격이 한때 급등했지만, 신규 주택의 상당수가 도심 재건축이 아니라 외곽 신규 택지에서 공급되는 구조여서, 공사비 상승이 곧바로 '조합 대 시공사'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신 고금리가 착공을 억눌렀다.
영국은 런던을 중심으로 노후 주택 재생 수요가 크지만, 물가연동 계약과 표준화된 공사비 산정 관행이 비교적 정착돼 있어 분쟁의 양상이 한국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일본의 사례는 특히 시사적이다.
도쿄의 노후 맨션 재건축은 한국의 재건축과 구조가 비슷하지만, 자재비·인건비 급등과 만성적 건설 인력 부족이 겹치며 재건축 자체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소유주 고령화로 추가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가 많다는 점도 한국이 곧 마주할 문제를 앞서 보여준다.
세 나라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사비 급등이라는 충격은 공통이지만 그것이 '공급 지연'으로 증폭되는 정도는 재건축 의존도와 분쟁 조정 장치의 유무에 따라 갈린다.
도심 재건축·재개발에 신규 공급을 크게 기대는 한국은 그만큼 공사비 쇼크에 취약한 구조다.
취약한 곳은 어디인가 — 조합원과 세입자, 그리고 실수요자
이 충격의 무게는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압박을 받는 쪽은 자금 여력이 얇은 조합원이다.
분담금이 수천만 원 단위로 뛰면 고령·저소득 조합원은 사업 자체를 포기하거나 지분을 팔고 떠나야 한다.
재개발 구역의 세입자는 이주 대책과 이주 시점이 흔들리면서 주거 불안에 직접 노출된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이주와 재정착 사이의 공백은 길어진다.
실수요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울의 신축 입주 물량이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흐름은 이미 몇 년 전 인허가·착공 단계에서 결정된 것이어서, 지금 당장 정책을 바꿔도 향후 몇 년간의 공급 부족은 되돌리기 어렵다.
공급이 얇아진 자리에서 전셋값과 매맷값이 함께 자극받으면, 정작 새 아파트를 기다리던 실수요자가 상승장의 비용을 떠안는다.
공사비라는 한 줄의 숫자가 조합 총회장을 넘어 임대차 시장까지 파문을 넓히는 구조다.
본지의 마지막 명제는 이렇다.
정비사업 공사비 쇼크는 '가격'의 문제이기 이전에 '측정'의 문제다.
같은 공사비를 두고 지수와 실거래가 다르고, 같은 사업 기간을 두고 8.7년과 15년이 공존하는 한, 조합과 시공사는 매번 다른 지도를 들고 협상장에 앉게 된다.
신뢰할 수 있는 표준 산정 기준과 제3자 검증, 그리고 분쟁 국면에서도 사업을 지탱할 금융·제도 장치가 갖춰질 때, 비로소 앞당겨진 행정의 시간이 실제 입주의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의 공급 병목을 푸는 열쇠는 새 규제가 아니라, 서로 어긋난 숫자들을 맞추는 일에서 시작된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7월 30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건설공사비지수(2020=100)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공사비원가관리센터의 2026년 2~3월 발표치(133.69·134.42, 7개월 연속 최고치)를 사용했다.
정비사업 소요기간(계획 3.65년·시행 6.41년·합계 약 8.7년, 논의부터 준공까지 15~20년)은 서울시 정비사업 통계와 관련 보도를 교차 확인했다.
주택 인허가·착공 급감과 미착공 정비구역 70곳은 국토교통부 통계 및 언론 보도를, 표준건축비(건물신축가격기준액) 수준은 행정안전부 고시 기준을 참고했다. 2025년 시행 도시정비법 개정(재건축진단 전환·인가 병행·동의요건 완화·구역지정~착공 14.5년→9년 목표)은 국토교통부 자료와 법조·업계 해설을 대조했다.
개별 현장 3.3㎡당 단가(584만→959만 원)는 특정 사업장의 재산정 사례로, 전체 평균이 아닌 참고치다.
시장 단가·표준건축비 등 일부 수치는 시점·현장에 따라 편차가 있어 범위·추정으로 표기했다.
상충하는 수치는 최신 발표치를 우선했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