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피지컬 AI·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둘러싼 세계 밸류체인에서 한국의 좌표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칩은 앞서고, 데이터와 모델은 뒤처진다.
본지가 지난 6월 말 대통령의 3대 메가프로젝트 구상, 7월 정부의 피지컬 AI 국가전략산업 지정안, 그리고 해외 시장·투자·논문 자료 다섯 갈래를 교차 분석한 결과다.
정부가 내건 목표는 담대하다.
지금 1% 안팎에 머무는 휴머노이드 세계시장 점유율을 2028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그러나 그 사다리의 가운데 두 칸, 즉 로봇이 학습할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지능으로 바꾸는 파운데이션 모델은 여전히 비어 있다.
먼저 용어부터 정리하자.
피지컬 AI는 화면 속 문장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해 몸을 움직이는 인공지능을 가리킨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은 그 두뇌에 해당한다.
언어 모델이 방대한 문서로 한 번 학습한 뒤 번역·요약·대화를 두루 해내듯,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시각·언어·행동 데이터를 사전 학습해 물건 집기, 정리, 조립 같은 여러 작업을 한 두뇌로 수행하도록 설계된다.
이 방식이 이른바 로봇판 전환점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지난 1~2년 산업을 달궜다.
피지컬 AI·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이란 무엇이고, 시장은 얼마나 큰가
시장 추계는 정의에 따라 크게 갈린다.
소프트웨어와 모델로 좁게 잡은 한 조사기관은 피지컬 AI·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시장을 2025년 16억 달러에서 2034년 228억 달러로, 연평균 41%대 성장으로 추정한다.
하드웨어까지 넓게 포함한 다른 추계는 2025년 기준 800억 달러대를 제시하기도 한다.
숫자의 폭은 넓지만 방향은 하나다.
가파른 우상향이다.
투자 흐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해외 집계를 보면 2024년부터 최근까지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분야에만 아홉 건, 약 39억 달러의 대형 투자가 몰렸다.
미국의 한 로봇 두뇌 스타트업은 2024년 4억 달러를 유치했고, 또 다른 곳은 2024년 3억 달러에 이어 2025년 5억 달러를 추가로 끌어모았다.
기술의 무게중심도 빠르게 이동했다. 2025년 3월 한 미국 반도체 기업은 사람 형태 로봇을 겨냥한 개방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처음 공개했고, 두 달 뒤 개선판을 내놨다.
같은 해 6월에는 기기 자체에서 돌아가는 시각·언어·행동 모델이 미세조정용으로 풀렸다.
중국 업체들도 속도를 냈다.
한 휴머노이드 기업은 2026년 3월 1만 번째 로봇 출하를 알리며 올해를 '양산 원년'으로 선언했고, 또 다른 업체는 2026년 8월 상하이 증시 상장에서 90억 달러 안팎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2026년 2월 발표된 한 논문은 로봇 정책의 성능이 사전학습 데이터 규모에 비례해 예측 가능하게 좋아진다는 점을 처음으로 강하게 입증했다.
언어 모델을 키운 그 법칙이 로봇에도 통한다는 신호다.
데이터가 곧 실력이 되는 국면으로 접어든 셈이다.

한국은 칩·데이터·모델 중 어디에 서 있나
이 대목에서 한국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밸류체인을 칩, 데이터, 모델 세 층으로 나눠 보면 한국은 맨 아래 칩 층에서만 세계 최상위권이다.
고대역폭 메모리를 앞세운 메모리 반도체는 두 대기업이 세계 시장을 사실상 양분한다.
정부도 이 강점을 밀어붙인다.
대통령은 6월 말 연설에서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도약의 3대 축으로 규정했고, 정부와 기업은 여러 해에 걸쳐 1조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두 반도체 대기업만 5850억 달러를 신규 팹에 투입하고, 별도로 15년간 30조 원을 소재·부품·장비를 포함한 칩 밸류체인에 배정한다.
문제는 그 위 두 칸이다.
데이터 층에서 한국은 얇다.
로봇이 실제 몸으로 겪은 행동 데이터는 문서·이미지처럼 인터넷에 널려 있지 않다.
공장·물류·가정에서 수천, 수만 시간의 조작 기록을 직접 쌓아야 하는데, 이 데이터는 기업마다 형식이 다르고 서로 섞이지 않는 이른바 '데이터 섬'에 갇혀 있다.
해외에서는 시각·언어·행동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려 인터넷 영상으로 물리 법칙을 학습하는 세계 모델 연구가 활발하지만, 한국은 대규모 로봇 행동 데이터를 공동으로 모으고 나누는 판 자체가 아직 설익었다.
모델 층은 더 뒤처져 있다.
세계를 주도하는 로봇 두뇌는 미국과 중국의 손에 있고, 한국 정부는 세계 모델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을 '3년 안'에 갖추겠다는 목표를 이제 막 세운 단계다.
본지 분석의 첫 번째 명제는 여기서 나온다.
한국의 강점인 메모리는 밸류체인의 가장 아래층이자, 부가가치가 위로 갈수록 커지는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이익률 방어가 어려운 자리라는 점이다.
로봇 한 대의 값에서 두뇌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차지하는 몫이 커질수록, 칩만 잘 만드는 나라는 남 좋은 일에 부품을 대는 처지가 되기 쉽다.
실제 정부도 이 위험을 읽었다.
미래차·로봇 특화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 개발에 2030년까지 1조 3000억 원, 데이터센터용 신경망처리장치에 2031년까지 7000억 원, 고대역폭 메모리 이후의 저전력 메모리에 2032년까지 2000억 원을 배정한 것은 메모리 초격차를 로봇 엣지 추론이라는 상방으로 끌어올리려는 포석이다.
두 번째 명제.
정부가 내건 '점유율 1%를 20%로'라는 구호는 칩이 아니라 데이터와 모델에서 판가름 난다.
새만금의 로봇 파운드리, 대경권의 실증 테스트필드, 조선업 특화 휴머노이드 도입, 연 1000대 규모의 산업용 로봇 보급은 모두 하드웨어 양산과 현장 실증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 계획들의 진짜 값어치는 로봇을 몇 대 깔았느냐가 아니라, 그 로봇이 현장에서 쏟아내는 행동 데이터를 누가 표준 형식으로 모아 두뇌 학습에 되먹이느냐에 달렸다.
실증 현장을 '데이터 공장'으로 재설계하지 못하면, 1000대는 그저 1000대로 끝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자리는
국제 비교로 좌표를 다시 찍어 보자.
미국은 모델 층에서 압도적이다.
개방형·비공개형을 가리지 않고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의 원천 기술과 대형 자본이 그곳에 몰려 있으며, 반도체 설계와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까지 상방을 틀어쥐고 있다.
데이터·모델·핵심 칩 설계를 삼각으로 묶은 수직 구조가 강점이다.
중국은 다른 길을 간다.
방대한 내수 제조 현장과 공격적 양산, 국가 주도의 빠른 배치로 데이터와 하드웨어를 동시에 쓸어 담는다.
한 업체가 1년 만에 1만 대를 내보내고 곧장 증시에 오르는 속도는, 현장에서 데이터를 긁어모으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이 산업의 문법을 상징한다.
일본은 정밀 감속기·모터·센서 같은 로봇 부품에서 오랜 강국이다.
몸의 관절과 근육에 해당하는 정밀 부품은 여전히 일본과 유럽의 몫이 크다.
이 지형 위에 한국을 겹쳐 놓으면 특징이 뚜렷하다.
메모리라는 강력한 한 다리와, 자동차·조선·가전이라는 두터운 실증 수요를 동시에 가졌다는 점은 분명한 자산이다.
세계에서 이 둘을 함께 가진 나라는 드물다.
그러나 부품(일본·유럽), 모델(미국), 양산 데이터(중국)라는 세 축의 강자 사이에서, 한국은 아직 '어디로 특화할지'를 확정하지 못했다.
본지의 세 번째 명제는 이것이다.
한국의 승부처는 남의 강점을 그대로 좇는 전면전이 아니라, 메모리·데이터센터라는 인프라 강점과 자동차·조선·가전이라는 현장 수요를 잇는 '데이터에서 엣지 추론까지'의 수직 연결에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험실에서 인상적인 로봇 시연이 실제 환경의 무한한 변수 앞에서 무너진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셔츠를 개고 식탁을 치우는 일상적 조작조차 로봇에게는 어렵다.
데이터가 성능을 끌어올린다는 법칙이 확인됐다지만, 그 데이터를 모으는 비용과 시간은 만만치 않다.
시장 추계의 편차가 열 배 넘게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산업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데이터와 모델을 남에게 의존한 채 부품과 칩만 대는 구조로는, 점유율 20%는커녕 현재의 강점마저 잠식될 수 있다.
진단을 넘어: 한국을 위한 3단계 과제
본지는 세 갈래의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데이터다.
정부가 깔겠다는 실증 테스트필드와 산업용 로봇 1000대를 처음부터 '국가 로봇 행동데이터 공동수집·공유 인프라'로 설계해야 한다.
조선소·공장·병원 현장에서 나오는 조작 데이터를 표준 형식으로 모으고,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지키는 선에서 기업과 연구기관이 함께 쓰도록 판을 열어야 데이터 섬이 대륙이 된다.
실증을 실적 홍보가 아니라 데이터 축적으로 회계 처리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모델이다. 3년 안에 세계 모델 기반 한국형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방향은 옳되 속도가 관건이다.
처음부터 국산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와 짝을 맞춰 '칩과 두뇌를 함께 설계'하는 수직 통합이 핵심이다.
한국이 가진 메모리·엣지 반도체 강점은 로봇이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온디바이스 추론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모델을 남의 칩 위에 얹는 대신, 한국 칩 위에서 가장 잘 도는 한국 모델을 만드는 편이 밸류체인 상방의 이익을 국내에 붙들어 둔다.
셋째, 특화다.
모든 산업의 만능 로봇을 좇기보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현장을 가진 조선·자동차·반도체 제조 같은 영역에 두뇌를 먼저 깊게 뿌리내려야 한다.
좁고 깊은 현장에서 데이터를 쌓아 성능을 검증한 뒤 이웃 산업으로 넓히는 전략이, 자본과 인력에서 앞선 미국·중국을 상대로 한 현실적 해법이다.
강점을 지렛대로 삼아 약한 두 칸을 메우는 것, 이것이 점유율 1%와 20% 사이의 열아홉 칸을 채우는 유일한 길이다.
칩은 이미 손에 쥐었다.
남은 것은 데이터와 모델이라는, 더 어렵지만 더 값진 두 칸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08-17 기준으로 작성됐다.
시장 규모·투자액·성장률은 해외 조사기관과 투자 집계의 공개 추계를 교차 확인했으며, 정의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점을 본문에 명시했다.
한국 정부 수치는 6월 말 대통령 연설, 2026~2028 인공지능 기본계획, 7월 피지컬 AI 국가전략산업 지정 관련 보도와 예산 항목을 대조했다.
휴머노이드 점유율 1%→20% 목표와 연 1000대 보급, 2028년 10대 산업 상용화, 저전력 신경망처리장치 R&D 배정액(1조 3000억·7000억·2000억 원)은 정부 발표 및 복수 보도로 확인했다.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의 데이터 스케일링 효과와 세계 모델 논쟁은 2026년 발표 논문 및 기술 매체 보도를 참고했다.
모델·업체 고유명은 규정에 따라 익명 처리했다.
일부 시장 수치는 추정·범위임을 밝힌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