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발전사업 접속 대기열 허수 물량 문제가 한국 전력망 정책의 최전선으로 떠올랐다.

한국전력이 '송·배전용전기설비 이용규정'을 개정해 지난 7월 20일부터 시행하면서, 그동안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약 30기가와트(GW) 규모의 발전사업이 처음으로 회수·정리 대상 명단에 올랐다.

본지가 개정 규정 원문과 지역별 접속 대기 통계, 미국·영국의 계통 접속 개혁 사례를 교차 분석한 결과, 지금 대기열에 걸린 물량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실제 착공 의사가 흐릿한 '허수'였고, 이 껍데기를 걷어내야 비로소 전력망에 진짜로 연결될 유효 물량이 모습을 드러내는 구조였다.

이번 개정의 뼈대는 단순하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도 1년 안에 전력망 이용을 신청하지 않거나, 이용신청을 하고도 1년 안에 이용계약을 맺지 않으면 확보해 둔 접속용량을 회수한다.

계약 체결 이후 사업이 실제로 굴러가는지 들여다보는 점검 주기도 종전 2년에서 1년으로 짧아졌다.

사업 기간이 긴 해상풍력에는 중간점검을 새로 넣어, 이용개시 5년 전까지 환경영향평가 완료 여부를, 3년 전까지 고정가격계약 체결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요컨대 '자리만 맡아 놓고 사업은 안 하는' 관행에 시한을 박은 셈이다.

발전사업 접속 대기열 허수 물량이란 무엇인가

계통 접속 대기열은 발전소를 지으려는 사업자가 전력망에 연결해 달라고 줄을 서 놓은 대기 명단이다.

문제는 이 줄이 실제 공사 능력과 무관하게 길어진다는 데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부지만 확보하면 비교적 손쉽게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접속용량을 선점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금 조달이 막히거나,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애초에 접속 권리 자체를 되팔 요량으로 신청한 경우도 뒤섞여 있다.

이렇게 실체가 불분명한 물량이 앞줄을 차지하고 있으면, 정작 지금 당장 건설이 가능한 사업자가 뒷줄에서 몇 년씩 발이 묶인다.

이것이 이른바 '허수 물량', 해외에서 '좀비 프로젝트'라 부르는 현상이다.

한전이 이번에 관리 사각지대로 지목한 30GW는 그 자체가 곧 허수라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는 '허가는 났지만 이용신청 이전 단계에 머물러 진행 상황을 들여다볼 근거조차 없던' 물량이다.

이 가운데 진짜 사업과 껍데기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는 점검 절차를 돌려봐야 갈린다.

다만 규제 당국이 30GW를 통째로 '전 주기 관리' 대상으로 편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동안 대기열 숫자가 실제 건설 가능 물량을 크게 부풀리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대기열 숫자와 유효 물량은 얼마나 벌어져 있나

본지 분석에 따르면 첫 번째 명제는 이렇다. 대기열의 명목 규모와 실제 연결 가능한 유효 물량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그 단서는 지역 데이터에서 뚜렷하게 잡힌다. 재생에너지가 몰린 호남권의 경우 지난해 10월 기준 접속 대기 물량이 약 2.5GW 수준으로, 권역 전체 대기열의 60%를 웃돌았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한전이 '허수전력'을 회수해 재배분한 규모가 호남권에서만 2.3GW에 달했다. 대기 명단에 올라 있던 물량 상당수가 실제로는 자리를 비켜줄 수 있는 껍데기였다는 얘기다. 회수분은 곧바로 접속을 기다리던 실수요 사업자에게 넘어갔다.

두 번째 명제. 허수 정리는 '없던 전력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있는 전력망의 배분 효율을 끌어올리는 조치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접속용량을 회수해 재배분하면 대기 순번은 앞당겨지지만, 변전소·송전선로 같은 물리적 계통 용량의 절대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태양광·풍력의 연간 출력제어율을 3% 수준으로 미리 반영했고, 2035년 이후에는 이를 5%까지 확대하는 방향을 열어뒀다. 계통이 감당 못 하는 시간대에는 이미 지은 발전소의 출력을 강제로 깎겠다는 뜻이다. 허수를 걷어낸다고 이 근본적 병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대기열 정비와 계통 보강은 별개의 트랙에서 함께 굴러가야 한다.

세 번째 명제. 한국의 '선접수' 관행 탈피는 국제 흐름과 방향은 같지만 속도는 뒤처져 있다. 이 대목은 해외 비교로 또렷해진다.

한국 접속 대기열,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미국은 2023년 7월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이른바 '오더 2023'을 통해 접속 절차를 전면 손봤고, 이듬해 3월 후속 결정으로 핵심 골격을 확정했다.

개별 신청을 순서대로 처리하던 '선착순(first-come)' 방식을 버리고, 비슷한 지역·시기의 프로젝트를 묶어 함께 검토하는 군집 연구와 '준비된 순서(first-ready)' 원칙으로 갈아탔다.

배경에는 폭증한 대기열이 있다.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 집계로 2023년 말 미국의 접속 대기 물량은 2.6테라와트(TW)까지 불었고, 이 가운데 실제로 상업운전에 도달한 비율은 극히 낮았다. 2000~2018년 대기열 중 실제 건설로 이어진 용량은 14%에 그쳤고, 최근 상업운전에 도달한 프로젝트는 평균 4년 반을 줄에서 보냈다.

대기열 숫자가 곧 미래 발전량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 데이터는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규제기관 오프젬(Ofgem)은 2025년 4월 계통운영기관(NESO)의 접속 개혁안, 이른바 'TM04+'를 승인했다.

역시 선착순을 폐기하고 프로젝트의 준비 성숙도와 전력시스템의 실제 필요를 기준으로 접속 순서를 다시 매기는 방식이다.

당시 영국의 접속 대기열은 700GW를 훌쩍 넘겨, 재생에너지만 750GW를 웃돌았다.

상당수가 '투기적으로 신청만 해 놓은' 좀비였다.

영국은 이 개혁으로 유망한 태양광 등을 신속 처리 궤도에 올리고, 2025년 하반기부터 수정된 접속 제안을 순차 발송하기 시작했다.

세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한국의 좌표가 보인다.

미국·영국은 2023~2025년 사이 이미 '준비된 사업자 우선' 원칙으로 제도의 축을 옮겼다.

한국의 이번 개정은 방향에서는 같은 궤도에 올라섰지만, 접속 순서를 산정하는 원칙 자체를 준비도 기준으로 재설계했다기보다 '지연·허수를 회수하는 필터'를 먼저 끼운 단계에 가깝다.

큐 자체를 재설계한 미국·영국과 견주면, 한국은 대기열 청소를 통해 유효 물량을 드러내는 초입에 서 있는 셈이다.

방향은 맞되 아직 갈 길이 남았다.

허수 정리하면 재생에너지 접속은 정말 늘어날까

네 번째 명제. 이번 조치의 진짜 성패는 규정 문구가 아니라 '회수한 용량을 얼마나 빠르게, 투명하게 재배분하느냐'에 달려 있다. 호남권 2.3GW 재배분처럼 회수-배분이 신속히 맞물리면 실수요 사업자의 대기가 실질적으로 짧아진다. 반대로 회수는 해 놓고 재배분 규칙이 불투명하거나 늦으면, 껍데기만 사라지고 병목은 그대로다. 여기서 취약한 쪽은 자금력이 약한 중소 태양광 사업자다. 대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금융비용과 부지 임차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착공 전에 사업을 접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기열 정비가 대형 사업자에게만 유리한 '자리 재분배'로 흐르지 않도록, 회수 물량의 배분 기준을 공개하고 이의제기 절차를 촘촘히 두는 일이 관건이다.

다섯 번째 명제이자 이번 개정을 둘러싼 가장 예민한 쟁점. 규정 시행만으로 접속 대기 기간이 단축된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개정 규정은 2026년 7월 20일 시행됐지만, 기존 사업자에게는 유예가 주어져 있다. 2025년 8월 21일 이전 허가 사업자는 2026년 8월 20일까지 이용신청을, 2025년 9월 21일 이전 신청 사업자는 2026년 9월 20일까지 이용계약을 마쳐야 한다. 즉 실제 회수가 본격화하는 시점은 유예 만료 이후다. 시행 초기 데이터가 쌓이기 전까지 '대기 단축' 효과는 검증 진행형으로 두는 것이 정확하다. 규정의 취지와 실제 성과 사이의 간극은 앞으로 1년치 회수·재배분 실적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정책적 함의는 분명하다.

대기열 청소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허수를 걷어내 유효 물량을 드러내는 작업과, 변전소·송전선로를 실제로 늘리는 계통 보강, 그리고 출력제어를 완충할 에너지저장장치(ESS)·수요자원의 확충이 삼각편대로 함께 가야 재생에너지 100GW 시대의 접속 병목이 풀린다.

규정 하나로 30GW가 마법처럼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회수-재배분-보강의 사이클을 얼마나 끈질기게 돌리느냐가 향후 몇 년을 좌우한다.

이번 개정은 그 사이클의 첫 단추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8월 26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근거 자료는 한국전력의 '송·배전용전기설비 이용규정' 개정(2026년 7월 19일 발표, 7월 20일 시행) 관련 보도, 호남권 허수전력 회수·재배분 통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출력제어율 목표, 미국 FERC 오더 2023과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의 접속 대기열 집계, 영국 오프젬의 TM04+ 승인(2025년 4월)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팩트체크 다섯 개 주장에 대한 판정은 다음과 같다. ①'30GW가 관리 대상에 편입됐다' → TRUE. ②'대기열 상당 부분이 허수다' → HALF-TRUE(허수 규모는 점검 전까지 추정치이며 30GW 전부가 허수는 아님). ③'허수 정리가 곧 재생에너지 접속 확대로 직결된다' → MISLEADING(물리적 계통 용량 증설과는 별개). ④'한국의 제도 전환이 미국·영국보다 늦다' → HALF-TRUE(방향은 동일하나 큐 재설계 단계는 미도달). ⑤'규정 시행으로 대기 기간이 단축된다' → CHECKING(유예 만료 후 실적으로 검증 필요).

수치는 발표 시점과 기관을 함께 표기했으며, 시점이 불확실한 값은 '약'·범위로 처리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