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전월세 갱신계약 비중 47%.
올해 서울 임대차 시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 숫자다.
본지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와 민간 부동산 통계업체의 계약 유형별 집계를 교차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체결된 전·월세 계약 가운데 살던 집을 그대로 연장하는 갱신계약의 비중은 1년 전 39.7%에서 46.7%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새 집을 구해 맺는 신규계약은 3만8907건에서 3만2200건으로 17.2% 급감했다.
세입자 두 명 중 한 명은 이제 이사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머문다.
시장이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얼어붙은 것이다.
본지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숫자는 세입자의 안정이 아니라 협상력의 후퇴를 가리킨다.
갱신이 늘어난 배경에 자발적 선택보다 '나갈 곳이 없다'는 강제된 사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오르고 매물이 마르면, 옮겨갈 대안이 사라진 세입자는 조건을 따질 힘을 잃는다.
갱신율이라는 지표는 그래서 안정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표정이 사뭇 다르다.
전월세 갱신계약 비중 47%란 무엇인가
갱신계약은 기존 임대차 계약의 만기가 돌아왔을 때 같은 집에서 계약을 이어가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에는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법적으로 2년 연장을 보장받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청구권 없이 임대인과 임차인이 직접 합의해 재계약하는 방식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서울의 갱신 비중은 통상 40% 안팎에서 오르내렸다.
그 선을 훌쩍 넘어 46.7%까지 올라온 것은 단순한 계절적 변동으로 보기 어렵다.
수치를 뜯어보면 방향은 더 뚜렷하다.
갱신계약 건수는 2만5629건에서 2만8251건으로 10.2% 늘었다.
반대로 신규계약은 두 자릿수로 빠졌다.
여기에 가격 지표가 겹친다.
한국부동산원과 민간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원대 후반,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전세를 구하려 해도 물건이 없고, 있어도 예전 보증금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결국 지금 사는 집을 지키는 쪽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흐름을 되짚으면 이렇다. 2020년 7월 임대차 2법 시행 직후에는 청구권을 새로 쓸 수 있게 된 세입자가 몰리며 갱신이 급증했다.
이어 2021~2022년 전셋값이 뛰자 신규 계약의 보증금이 치솟았고, 청구권으로 5% 상한 안에 묶인 기존 세입자와 시장가로 들어온 신규 세입자 사이에 '이중가격'이 벌어졌다. 2023년 전세사기와 역전세 파동을 거치며 세입자들은 이사 자체를 꺼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5~2026년, 매물이 마르고 전셋값이 다시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눌러앉기가 구조로 굳었다.
한 해의 튀는 숫자가 아니라 5년에 걸친 누적의 결과라는 얘기다.

흥미로운 대목은 청구권 사용률이다.
일부 자치구 단위 집계를 보면 갱신계약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실제로 행사한 비중은 48.3%에서 43.5%로 4.8%포인트 낮아졌다.
갱신은 늘었는데 법적 권리 행사는 줄었다는 뜻이다.
자치구별 편차도 커서 갱신 비중이 절반을 넘긴 중랑구·성북구·송파구·서초구가 있는가 하면, 동대문구·종로구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곳도 있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시장의 온도는 균일하지 않다.
이 대목에서 본지 분석은 통념과 갈라진다.
청구권 사용이 줄어든 것을 두고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읽는 해석이 있으나, 계약 건수와 보증금 변동을 함께 놓고 보면 결이 다르다.
청구권은 한 번밖에 못 쓰는 카드다. 2020~2022년 사이 이 카드를 이미 소진한 계약이 만기를 맞으면서, 이제는 권리 없이 임대인이 부르는 값에 재계약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권리 행사율 하락은 협상 여지의 확대가 아니라 협상 카드의 소진에 가깝다.
집주인과 세입자, 갈라지는 선택
같은 시장 안에서도 주체별 셈법은 갈린다.
임대인은 크게 두 부류다.
보유세와 이자 부담이 큰 다주택 임대인은 공실 위험을 피하려 기존 세입자를 붙잡되 상한선까지 보증금을 끌어올린다.
반면 실거주 전환을 저울질하는 1주택 임대인은 갱신을 거절하고 직접 들어가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청구권이 남은 세입자는 5% 상한이라는 방패 뒤에서 버티지만, 카드를 이미 쓴 세입자는 시장가 재계약과 이사 사이에서 저울질하다 대개 눌러앉는다.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세입자,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는 가장 불리한 자리에 선다.
매물은 갱신으로 잠기고, 남은 신규 물건은 값이 높다.
지역별 편차도 이 구도를 뒷받침한다.
학군·교통으로 대체 수요가 몰리는 지역일수록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온다'는 압박이 크고, 그만큼 눌러앉기가 강해진다.
시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빠져나갈 틈이 좁아서 갱신이 늘어나는 역설이다.
본지가 계약 유형과 가격 지표를 겹쳐 본 결과, 갱신 비중이 높은 지역과 전셋값 상승 폭이 큰 지역은 상당 부분 겹쳤다.
이동성 동결과 가격 급등은 서로를 밀어 올리는 관계다.
전월세 갱신계약 비중,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세입자가 한 집에 오래 머무는 것 자체는 나쁜 신호가 아니다.
문제는 '왜' 머무느냐다.
독일은 세입자의 상당수가 장기 거주하지만, 그 안정은 제도가 떠받친다.
임대료 상한제(미트프라이스브렘제)를 2029년까지 연장해 신규 계약 임대료가 지역 기준 임대료를 크게 넘지 못하도록 묶고, 기존 계약의 인상도 분기별 기준지수 안에서만 허용한다.
세입자는 오래 살수록 유리하고, 이동의 자유도 함께 보장된다.
프랑스도 파리처럼 주거난이 심한 인구 5만명 이상 지역에 임대료 상·하한을 두고, 계약 뒤 세입자를 내보내기 어렵게 설계했다.
미국 뉴욕주는 '정당한 사유 없는 퇴거 금지'로 임대인의 자의적 계약 종료를 제약한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세입자의 장기 거주가 '버티기'가 아니라 '권리'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오래 머물러도 임대료가 통제되고, 옮기고 싶을 때 옮길 수 있는 대체 매물이 시장에 존재한다.
반면 서울의 눌러앉기는 대체 매물의 실종과 가격 급등이라는 벽에 밀려난 결과에 가깝다.
같은 '높은 갱신율'이라도 그 안의 세입자가 웃는지 우는지는 정반대일 수 있다.
숫자만 보고 '한국도 독일처럼 임대가 안정됐다'고 말하면 절반의 진실만 읽는 셈이다.
임대차 2법 개편 논의, 세입자에게 득일까 실일까
공교롭게도 이 지표가 흔들리는 시점에 제도 자체가 도마에 올랐다. 2020년 도입된 임대차 2법, 곧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시행 5년을 넘기며 존폐 기로에 섰다. ���토교통부는 국토연구원의 주택임대차 제도개선 방안 연구를 공개하고 공론화에 들어갔다.
알려진 대안은 크게 넷이다.
두 제도를 모두 없애는 안,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별로 규제 여부를 정하는 안, 갱신 임대료 상한을 현행 5%에서 10%로 높이는 안, 그리고 기존 세입자에 대한 갱신 요구권만 남기는 절충안이 거론된다.
정부가 임대차 2법 개편을 공식 의제로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 분석으로는, 지금의 지표가 개편 논의의 방향을 좌우할 근거로 오용될 위험이 있다.
갱신이 늘고 청구권 사용이 줄었다는 통계는 '제도 없이도 시장이 돌아간다'는 논리로 포장되기 쉽다.
그러나 앞서 본 대로 청구권 사용률 하락의 상당 부분은 카드 소진에서 비롯된 착시다.
상한율을 5%에서 10%로 올리면 임대인의 숨통은 트이지만, 카드를 이미 쓴 세입자에게는 인상 폭이 두 배로 열리는 셈이다.
이동성이 얼어붙은 시장에서 상한을 푸는 것은, 협상력이 약한 쪽의 부담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소지가 크다.
제도를 손보되 순서를 잘못 잡으면, 안정의 외피를 두른 채 세입자만 더 얇은 지위에 놓일 수 있다.
함의와 남는 질문
정리하면 본지의 명제는 셋이다.
첫째, 서울의 갱신 비중 46.7%는 안정의 신호가 아니라 이동성이 얼어붙은 동결(lock-in)의 신호다.
둘째, 청구권 사용률 하락은 세입자 협상력의 회복이 아니라 카드 소진의 결과이며, 이를 '제도 무용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통계의 오독이다.
셋째, 이동성이 막힌 시장에서 신규 진입자, 특히 청년·신혼 세입자가 가장 큰 비용을 치른다.
대책의 초점은 '갱신율을 낮추는' 데 있지 않다.
눌러앉기를 강요하는 조건, 곧 매물 부족과 가격 급등을 푸는 데 있어야 한다.
임대차 2법을 손보더라도 상한율 완화 같은 단기 처방보다 전세의 월세 전환 흐름, 공공·민간 장기임대 공급, 보증금 미반환 위험 관리 같은 구조 변수를 함께 다뤄야 한다.
세입자에게 필요한 것은 '버틸 권리'만이 아니라 '옮길 자유'다.
갱신 비중이라는 한 숫자 뒤에는, 이사를 포기한 수만 가구의 계산이 숨어 있다.
그 계산을 읽지 못한 채 지표만 따라가면, 정책은 엉뚱한 곳에 힘을 쓰게 된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3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서울 전·월세 계약 유형별 비중(신규 대비 갱신)과 건수 변화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 자료와 이를 집계한 민간 부동산 통계업체·언론 보도를 교차 확인했으며, 갱신율과 계약갱신청구권 사용률의 자치구별 수치는 집계 기준이 섞여 있어 본문에는 방향성과 대표값 위주로 반영했다.
신규 대비 갱신 비중은 39.7%→46.7%, 신규계약 17.2% 감소, 갱신계약 10.2% 증가 수치를 기준으로 삼았고, 청구권 사용률은 48.3%→43.5% 하락 추정치를 함께 제시했다.
임대차 2법 개편의 4개 대안과 상한율 5%→10% 조정 논의는 국토교통부·국토연구원의 제도개선 연구 및 공론화 관련 보도를, 해외 사례는 독일 임대료 상한제(2029년 연장)와 프랑스·미국 뉴욕주 규제 자료를 참고했다.
통계 집계 기관·기간에 따라 세부 수치는 달라질 수 있어 일부는 범위·추정으로 표기했다.
본 기사의 검증 결과는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