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예금금리 상승기인데 정작 가계 예금자가 뒷전으로 밀리는 '기업자금 쏠림 개인예금 소외' 현상이 2026년 들어 뚜렷해지고 있다.

본지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통화(M2) 통계와 5대 시중은행 예금 잔액 자료를 시간축으로 교차 분석한 결과, 올해 불어난 은행 정기예금의 대부분은 기업 몫이었고 개인을 붙잡기 위한 수신 경쟁은 오히려 식어버린 역설이 확인됐다.

반년 사이 기준금리는 0.50%포인트 올랐지만,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그 절반가량만 따라왔다.

금리는 올랐는데 내 예금 이자는 왜 이 모양이냐는 개인 예금자의 체감과, 은행이 대규모 수신을 이미 확보했다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흐름을 시간순으로 따라가 보면 전환의 결이 선명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상황은 반대에 가까웠다. 1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고, 코스피가 달아오르자 개인 자금 일부는 예·적금 만기를 채우지 않고 증시로 옮겨갔다.

가계·비영리단체가 보유한 통화량이 한때 줄어든 배경이다.

은행 입장에서 개인 예금은 '언제 빠질지 모르는 돈'이 됐고, 실제로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예금을 합한 대기성 자금은 5월 말 714조원을 넘어섰다.

상당 부분이 기업이 굴리는 이른바 '기업용 파킹통장(MMDA)'이었다.

이 잔액은 1분기 111조원대에서 5월 하순 161조원대로 한두 달 새 50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투자를 미룬 기업들이 현금을 일단 은행에 쌓아 두는 방어적 자금 운용에 들어간 것이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클수록 기업은 설비나 인력에 돈을 묻기보다 유동성을 확보해 두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여기에 정책금융 공급이 확대되면서 집행 시차 동안 대기성 자금이 일시적으로 부풀려지는 효과까지 겹쳤다.

시장에서 '장기 예금에서 단기 대기성으로의 유동성 재편'이라는 진단이 나온 배경이다.

기업자금 쏠림에 개인예금이 소외되는 이유

변곡점은 여름에 찾아왔다.

한국은행이 7월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2.75%로, 이어 8월 다시 0.25%포인트를 더해 3.00%로 끌어올리면서 대기성 자금이 정기예금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은행 입장에선 반가운 흐름이다.

수시입출식에 흩어져 있던 돈이 만기가 있는 정기예금으로 묶이면 조달이 안정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돈의 성격이다.

본지가 5대 은행 정기예금 잔액을 뜯어보니, 지난달 말 잔액은 1005조원을 넘어 한 달 새 20조원가량 늘었는데, 지난해 말 대비 늘어난 정기예금 증가액 가운데 기업 몫이 53조원으로 전체의 80.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기업 정기예금 비중은 41.6%에서 44.2%로 높아졌다.

쉽게 말해 올해 정기예금 곳간을 채운 주인공은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었다.

바로 여기서 개인예금 소외의 구조가 드러난다.

은행은 굳이 개인에게 웃돈을 얹어 예금을 유치할 이유가 옅어졌다.

덩치 큰 기업 자금만으로도 수신 목표를 채울 수 있으니 가계를 향한 금리 경쟁의 동기가 약해진 것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9월 현재 연 3.20~3.30% 안팎에 머문다.

기준금리 3.00%보다 겨우 0.20~0.30%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반년간 기준금리가 0.50%포인트 오르는 동안 예금금리는 0.30%포인트 남짓 반영되는 데 그쳤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우리은행이 특정 상품 최고금리를 연 3.1%에서 3.6%로 올리는 등 인상 움직임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은 조건이 까다로운 우대금리 위주다.

예금금리는 왜 기준금리만큼 안 오르나

이 대목은 '예대금리차'라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은행연합회 공시를 보면 5대 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평균 가계 예대금리차는 3월 1.512%포인트에서 7월 1.298%포인트로 좁혀졌다.

언뜻 소비자에게 유리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축소는 예금금리가 크게 올라서라기보다 대출금리 상승이 시차를 두고 더디게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조달이 급하지 않은 은행은 수신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원리가 그대로 작동한 셈이다.

오히려 개인 예금자가 더 나은 이자를 원한다면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9월 초 기준 저축은행 1년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연 4.0%대, 신협 등 상호금융은 연 4.3%까지 제시돼 시중은행과 1%포인트 안팎 벌어져 있다.

안정성과 예금자 보호를 중시하는 다수 가계로서는 이 격차가 '소외'의 실감으로 다가온다.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특수한 일은 아니다.

은행이 금리 상승기에 예금금리를 굼뜨게 올리는 정도를 나타내는 '예금 베타(deposit beta)' 개념으로 보면, 미국에서도 2022년 긴축 초기 국면의 예금 베타가 과거 대비 크게 낮았다는 분석이 있다.

연방기금금리가 가파르게 뛰던 시기에도 은행들의 수신금리 반영은 굼떴고, 특히 예금자의 이동성이 떨어지고 예금 공급이 넉넉할수록 은행은 금리를 올릴 유인이 줄었다. 2025년 들어서도 미국 예금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좇아 은행을 갈아타기보다 그대로 머무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은행이 굳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않는 흐름이 이어졌다.

유럽 역시 중앙은행이 2022~2023년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동안 가계 예금금리 반영이 더뎠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금리에 민감한 기업 예금이 먼저 재조정되는 양상이 관찰됐다.

마이너스 금리를 오래 유지하다 정책을 정상화한 일본에서도 대형은행의 보통예금 금리 인상은 극히 미미한 폭에 그쳐, 예금자가 체감하는 이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규모가 크고 협상력이 있으며 조금이라도 금리가 낮으면 곧장 자금을 옮기는 기업·거액 예금에는 은행이 값을 쳐주는 반면, 이동 의향이 낮고 소액인 개인 예금에는 인색하다는 비대칭이다.

이 구조는 특정 국가의 예외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반복돼 온 은행 수신시장의 관성에 가깝다.

다만 한국은 최근 기업 대기성 자금의 유입 규모가 워낙 커, 개인이 밀려나는 정도가 더 도드라진다는 점이 다르다.

기업자금 쏠림·개인예금 소외, 앞으로 전망은

본지는 이번 흐름을 세 가지 명제로 정리한다.

첫째, 올해 은행 수신 증가의 실질적 동력은 가계가 아니라 기업의 대기성·단기 자금이며, 이 쏠림이 개인 대상 수신 경쟁을 구조적으로 위축시켰다는 것이 본지의 결론이다.

정기예금 증가액의 80% 이상을 기업이 채운 상황에서 은행이 개인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릴 이유는 크지 않다.

둘째, 지금의 예대금리차 축소는 예금자 후생이 개선된 신호라기보다 대출금리의 지연 반영이 만든 착시에 가깝다.

셋째, 기업 자금은 투자가 재개되거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일회성' 성격이 강해, 이를 근거로 한 수신 안정은 취약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의 예금 증가를 두고 '돌아온 예금이 아니라 일시적 기업자금'이라는 진단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함의는 예금자와 정책 양쪽에 걸쳐 있다.

개인 예금자로서는 시중은행 대표금리만 보고 만족할 게 아니라, 예금자 보호 한도 안에서 저축은행·상호금융의 금리와 만기 구조를 함께 비교해 자금을 배분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목돈을 한 은행에 묶기보다 만기를 분산하고, 우대조건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 실질 수취금리를 계산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이자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고령층과 소액 예금자일수록 이 격차의 타격이 크다.

이들은 위험자산으로 갈아타기 어렵고, 복잡한 우대조건을 채우기도 쉽지 않아 대표금리와 실제 수취금리의 간극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금리 상승기의 과실이 협상력 있는 기업에만 쏠리고 정작 예금 이자에 생활을 기대는 계층에는 닿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한 상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 후생의 분배 문제로 번진다.

정책·감독 당국으로서는 예대금리차와 수신금리 공시를 개인·기업으로 나눠 더 촘촘히 드러내고, 대기성 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이 예금시장의 금리 신호를 왜곡하지 않는지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결국 금리 상승기의 온기가 기업 금고에만 머물지, 가계 통장까지 닿을지가 앞으로 수신시장의 관전 포인트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15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기준금리 추이와 통화(M2) 통계는 한국은행 자료를, 예금은행 수신·대출금리는 한국은행·통계청(KOSIS) 신규취급액 기준 통계를, 예대금리차와 정기예금 금리 비교는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공시를 각각 교차 확인했다. 5대 은행 정기예금·요구불예금 잔액과 기업 정기예금 비중, 기업용 파킹통장(MMDA) 잔액은 최근 은행권 집계 보도를 대조해 인용했으며, 해외 사례의 '예금 베타'는 미국 감독·연구기관 자료를 참고했다.

일부 잔액·비중 수치는 발표 시점과 집계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어 '5대 은행 기준' 등 범위를 명시했다.

기사 verdict는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