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경기 용인에 살면서 서울 강남의 회사 근처 내과에서 혈압약을 타 온 직장인이 있다고 하자. 12월 24일 개정 의료법이 시행된 뒤, 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의원을 직접 찾은 지 6개월이 지나면 같은 의원에 화상 진료를 요청해도 '초진'으로 분류된다.

초진 비대면진료는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같은 시·도에 있는 의원에서만 받을 수 있다.

실거주지를 따로 등록할 수는 있지만, 기준은 사는 곳이지 일하는 곳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19일부터 11월 9일까지 입법예고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비대면진료를 법에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 2010년 첫 개정안이 나온 지 15년 만이다.

그사이 비대면진료는 코로나19 시기 한시 허용을 거쳐 2023년 6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이어져 왔다.

개정안이 정한 숫자는 이렇다.

같은 의료기관에서 6개월 안에 같은 증상으로 대면진료를 받았다면 '일반 비대면진료' 대상이고, 아니면 초진이다.

초진 처방은 7일까지가 원칙이다.

진료·처방 이력이 확인되면 한 번에 한해 30일까지 늘릴 수 있다.

의료기관 한 곳의 비대면진료는 반기 전체 진료건수의 30%를 넘지 못하고, 의사 한 명이 비대면으로 볼 수 있는 건수는 반기 월평균 500건까지다.

치과의사와 한의사는 130건이다.

마약류와 오·남용 우려 의약품, 비만치료제는 비대면으로 처방할 수 없다.

어디서 본 듯한 숫자들

해외 규정을 옆에 놓으면 낯설지 않은 숫자들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온라인 진료 지침은 기초질환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초진 환자에게 8일분 이상을 처방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상 7일이 상한이다.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은 초진 때 아예 처방할 수 없다.

비율 상한은 유럽에 있다.

독일은 진료소 한 곳에서 한 분기 동안 화상으로만 진료한 환자가 전체 진료건의 50%를 넘지 못하게 한다.

원래 30%였던 상한을 2025년 4월부터 올렸고, 그해 7월에는 아는 환자와 처음 보는 환자를 나누던 구분도 없앴다.

프랑스는 의사 한 명의 연간 진료 활동 가운데 원격진료가 20%를 넘지 않게 한다.

정신과는 40%다.

그런데 같은 숫자라도 무엇 위에 서 있느냐에 따라 작동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개정안을 해외 규정과 하나씩 맞대 보면, 숫자의 모양은 닮았어도 그 숫자를 떠받치는 바닥은 꽤 다르다.

프랑스 규칙의 중심엔 '내 주치의'가 있다

프랑스는 2004년 8월 13일 건강보험법을 고치면서 16세 이상 가입자가 주치의를 지정하게 했다.

주치의를 먼저 거쳐 다른 의사에게 가는 '조정된 진료 경로'를 벗어나면 본인 부담이 늘어난다.

원격진료 규칙도 여기에 맞물려 있다.

원격진료비를 건강보험에서 돌려받으려면 원칙적으로 주치의가 의뢰했거나, 그 의사에게 최근 12개월 안에 직접 진료를 받은 적이 있어야 한다. 20% 상한에서도 주치의가 자기 환자를 원격으로 보는 진료는 빠진다.

올해 6월 27일부터는 원격진료로 받은 병가 진단서를 연장까지 합쳐 최대 3일로 묶었는데, 여기서도 주치의는 예외다.

상한과 제한이 겨냥하는 건 서로 모르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진료다.

독일은 진료비 정산 단위인 '분기'로 센다

독일의 기준은 자국 진료비 체계에서 나왔다.

독일 공적 건강보험의 외래 진료비는 분기 단위로 진료건을 묶어 청구한다.

화상진료 상한 50%도 그 분기 진료건으로 계산하고, 같은 분기에 한 번이라도 진료소를 직접 찾은 환자는 아예 계산에서 빠진다.

새 규칙을 위해 따로 장부를 만들 필요가 없는 구조다.

대신 독일은 진료비로 균형을 잡는다.

한 분기 내내 화상으로만 본 환자는 기본 진료비를 깎고, 직전 3개 분기 안에 진료소를 찾은 적이 있는 '아는 환자'를 화상으로 보면 가산금을 붙인다.

상한이라는 벽보다 진료비라는 저울에 더 기대는 방식이다.

한국은 '같은 증상·6개월'이라는 기록으로 대신했다

한국에는 국민이 주치의를 정해 등록하는 제도가 아직 없다.

'한국형 주치의'로 불리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이 지난 9월 29일에야 전국 동네의원 120곳에서 50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정부는 2028년까지 시범사업을 거친 뒤 2029년부터 확대할 계획이다.

개정안이 '아는 환자'를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의료기관, 같은 증상, 6개월이라는 진료 기록으로 정의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관계를 증명할 제도가 없으니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건을 고른 셈이다.

문제는 그 기준이 해외보다 짧고 좁다는 데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아는 환자를 대략 1년 안의 대면 이력으로 판단하는 데 비해 한국은 6개월이고, 증상까지 같아야 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23년 6월부터 2026년 5월까지 3년 동안 비대면진료를 이용한 사람은 275만9858명, 진료는 729만6670건이었다.

많이 찾은 질환은 고혈압, 급성기관지염, 2형 당뇨병, 알레르기 비염, 감기 순이었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오래 약을 먹는 환자라면 6개월마다 의원을 직접 찾아야 일반 비대면진료 자격이 유지된다.

진료량이 다르면 30%의 무게도 다르다

비율 상한도 그대로 옮겨 놓고 볼 일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한눈에 보는 보건 2025」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 한 명이 의사에게 진료받은 횟수는 연 18회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회원국 평균은 6.5회, 2위인 일본은 12.1회였다.

의사 한 명이 보는 진료 건수도 한국이 가장 많다.

진료량이 평균의 세 배에 가까운 나라에서 '진료건의 30%'는 진료량이 훨씬 적은 독일이나 프랑스의 비율과 같은 크기로 볼 수 없다.

개정안이 비율과 별도로 의사 한 명당 월 500건이라는 건수 상한을 둔 것도 이런 차이를 의식한 장치로 볼 여지가 있다.

본지가 살펴본 일본·독일·프랑스·미국 규정에서는 같은 형태의 건수 상한을 찾지 못했다.

다만 500건이라는 숫자가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는 보도자료에 설명이 없다.

시·도 경계는 생활권과 어긋난다

초진을 주소지 시·도로 묶는 규정도 따져 볼 대목이다.

서울과 경기·인천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하나의 생활권이다.

앞에서 든 직장인처럼 집은 경기에, 직장과 다니던 의원은 서울에 있는 사람에게 이 경계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개정안은 희귀질환자, 제1형 당뇨병 환자, 등록장애인, 장기요양수급자는 시·도 밖 의원에서도 초진을 받을 수 있게 예외를 뒀지만, 통근하는 직장인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미국은 반대편에 서 있다

미국은 정반대 사례다. 2008년 제정된 라이언 헤이트법은 규제약물을 처방하기 전에 대면 진찰을 하도록 했지만, 코로나19 때 풀어 준 특례가 계속 연장되고 있다.

미국 마약단속국은 지난해 12월 30일 네 번째 연장을 발표해 올해 12월 31일까지 대면 진찰 없이도 화상으로 2~5등급 규제약물을 처방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대신할 정식 규칙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국 개정안은 마약류 비대면 처방을 원칙적으로 막은 채 출발한다.

숫자보다 먼저 필요한 것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프랑스의 20%는 주치의 제도 위에, 독일의 50%는 분기 정산 체계 위에, 일본의 7일은 평소 다니는 '단골 의사'가 초진을 맡는다는 원칙 위에 세워진 숫자다.

일본은 한국처럼 환자가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고르는 나라다.

그런 일본도 2025년 4월부터 특정기능병원 등을 뺀 병원과 진료소가 자신이 어떤 단골 의사 기능을 하는지 해마다 광역자치단체에 보고하게 했다.

숫자를 정하는 것과 함께, 그 숫자가 기댈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제도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치의 시범사업은 이제 막 첫발을 뗐다.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비대면진료 기준이 먼저 확정되는 만큼, 두 제도를 앞으로 어떻게 이을지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11월 9일까지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낼 수 있다.

의약품 배송에 관한 의견은 약무정책과가 받는다.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은 11월 2일까지 의견을 받는다.

취재에 참고한 자료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비대면진료 실시·처방기준 구체화하여 입법예고」와 별첨 개정령안 3건, 일본 후생노동성 「온라인 진료의 적절한 실시에 관한 지침」 2026년 4월 개정판, 독일 보험의사협회 KBV 공지와 화상진료 보수 안내(2026년 7월 1일 기준), 프랑스 건강보험공단 원격진료 안내와 공공서비스포털 공지(2026년 6월 30일), 미국 마약단속국 연장 공고(2025년 12월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 「한눈에 보는 보건 2025」, 남인순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를 확인했다.

나라마다 상한을 계산하는 단위가 기관·진료소·의사, 반기·분기·연간으로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