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서울의 한 요양시설에서 주 사흘, 하루 여섯 시간씩 어르신을 돌보는 63세 김모 씨를 떠올려 보자.
근로계약서에는 '계약기간 1년'이라고 적혀 있고, 정해진 요일에만 출근한다.
한국 통계에서 김 씨는 '비정규직'이다.
더 정확히는 '한시적'이면서 동시에 '시간제'인, 두 칸에 겹쳐 들어가는 사람이다.
같은 김 씨가 독일에서 일했다면 통계는 그를 '비정규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시간제는 시간제로, 기간을 정한 계약은 기간제로 따로 셀 뿐, 둘을 묶은 '비정규직'이라는 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21일 내놓은 2026년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면, 임금근로자 2,252만6천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867만1천명이다.
비중 38.5%, 1년 전보다 0.3%포인트 올라 역대 가장 높다.
숫자만 보면 '셋 중 하나 넘게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이 38.5%라는 한 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가면, 해외 숫자와 나란히 놓기가 생각보다 까다롭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2002년에 만들어진 한 칸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하나의 계약 형태가 아니다.
기간을 정했거나 곧 끝날 '한시적'(603만5천명), 남보다 짧게 일하는 '시간제'(438만2천명), 파견·용역·특수형태·일일 같은 '비전형'(178만6천명)을 한데 묶은 범주다.
한 사람이 여러 칸에 겹치기 때문에 셋을 더하면 전체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통계청은 '비정규성이 강한 순서'로 중복을 걷어내 867만1천명이라는 순계를 따로 낸다.
이 분류의 뿌리는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 합의다.
노·사·정이 '비정규직을 이렇게 세자'고 약속한 틀을 20년 넘게 그대로 쓰고 있는 셈이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비정규직 기준은 없다는 점을 보도자료도 명시한다.
그래서 한국은 OECD에 낼 때 숫자를 줄여 낸다.
OECD가 쓰는 '임시직(Temporary Workers)'은 '끝나는 날이 정해진 일자리'만 센다.
통계청은 기간제·단기기대·파견·일일만 추려 OECD에 보내고, 반복갱신·시간제·용역·특수형태·가정내는 뺀다.
그렇게 추린 한국의 임시직 비중은 2026년 8월 28.2%다.
국내용 38.5%와 10%포인트 차이가 난다.
같은 나라, 같은 달인데 기준에 따라 숫자가 이렇게 벌어진다.
유럽은 세 가지를 세 개의 법으로 따로 잡는다
유럽연합(EU)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일 범주가 없다.
대신 성격이 다른 세 가지를 각각 다른 지침으로 규율한다.
기간제는 기간제노동지침(1999/70/EC), 시간제는 시간제노동지침(97/81/EC), 파견은 파견노동지침(2008/104/EC)이다.
세 지침 모두 2026년 10월 현재 그대로 유효하다.
핵심 원칙은 비슷하다.
'같은 처지의 정규직·전일제 노동자보다 그 이유만으로 불리하게 대우하지 말라'는 차별금지다.
기간제 지침은 여기에 더해 '기간제 계약을 반복해 남용하지 못하게 하라'는 조항을 둔다.
통계도 따로 간다.
EU 통계기구(유로스타트)는 '계약의 한시성'과 '근로시간(시간제·전일제)'을 서로 다른 두 축으로 재며, 둘을 합친 수치를 내지 않는다. 2024년 EU의 한시적 고용 비중은 11.0%였다.

일본은 '정사원이 아니면 비정규'라고 부른다
일본은 접근이 또 다르다.
총무성 노동력조사는 계약 내용이 아니라 '직장에서 뭐라고 불리는가'(呼称)로 가른다.
정규직원 외에 파트,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계약사원, 촉탁, 기타 여섯 칸을 묶어 '비정규 직원'이라 부른다. 2025년 평균 그 비중은 36.5%다.
이 방식이 성립하는 토대는 일본 특유의 '정사원'이다.
장기·종신 고용을 전제로 한 정규직원이 뚜렷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정규란 사실상 '정사원이 아닌 모든 사람'으로 정의된다.
일본은 2020년(대기업)·2021년(중소기업)부터 '같은 일 같은 임금'을 담은 파트타임·유기고용노동법을 시행했고, 올해 10월 1일부터는 처우 차이의 이유를 노동자에게 설명하도록 의무를 강화했다.
시행 3주째다.
독일의 미니잡은 최저임금에 묶여 해마다 움직인다
독일은 시간제·기간제를 각각 따로 둘 뿐 아니라, '미니잡'이라는 별도 제도를 설계해 두었다.
미니잡은 월 소득이 일정액 이하인 소규모 일자리로, 그 상한이 2026년 1월 603유로(약 95만원)로 올랐다.
이 상한은 최저임금과 수식으로 묶여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13.90유로로 오르자 상한도 자동으로 따라 올랐다. 2026년 2분기 기준 미니잡 종사자는 약 696만명이다.
기간제도 규칙이 분명하다.
특별한 사유 없이 맺는 기간제 계약은 최장 2년, 그 안에서 세 번까지만 연장할 수 있다.
다만 독일도 흔들린다.
집권 연립정부는 올해 7월 이 상한을 48개월·6회로 늘리는 방안을 내놨다.
아직 법으로 통과되지는 않았다.
시간제는 전혀 다른 숫자다. 2024년 독일 취업자의 29%가 시간제로 일했지만, 누구도 이들을 뭉뚱그려 '비정규직 29%'라고 부르지 않는다.
스페인은 비정규를 줄이겠다고 작정하고 계약을 바꿨다
스페인은 제도를 아예 틀어 숫자를 끌어내린 사례다. 2021년 말 노동개혁(왕령 32/2021)으로 '근로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못 박았다.
오래 쓰이던 '공사·용역 계약'을 없애고, 한시 계약은 '생산 사정'과 '대체' 두 경우로만 좁혔다.
생산 사정 계약은 원칙적으로 6개월까지다.
강제력도 함께 걸었다.
규정을 어긴 한시 계약은 노동자 한 명당 1,000~1만유로의 제재를 받도록 했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유로스타트 기준 스페인의 한시 고용 비중은 2021년 24.9%에서 2025년 14.9%로 내려갔다.
OECD 기준으로도 2021년 25.2%에서 2025년 15.3%다.
이 개혁은 2026년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 숫자가 큰 데는 한국만의 사정이 있다
한국의 38.5%가 유독 커 보이는 첫째 이유는 분류다.
시간제를 비정규직에 넣기 때문이다.
시간제를 빼면 그림이 달라진다.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11만2천원이지만, 시간제를 제외하면 309만8천원으로 올라간다.
둘을 한 칸에 담아 평균을 내면 실제보다 더 열악해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둘째는 인구다. 2026년 8월 비정규직 가운데 60세 이상이 318만명(36.7%)으로 가장 많고, 1년 새 13만5천명 늘었다.
산업별로는 보건사회복지업이 186만7천명(21.5%)으로 가장 많다.
빠른 고령화와 돌봄 수요가 만든 노년 재취업·단시간 일자리가 비정규직 증가의 큰 축이라는 뜻이다.
유럽에서 한시 계약이 주로 청년 입직 통로인 것과는 결이 다르다.
비정규직을 자발적으로 택했다는 응답은 68.0%였다.
한국 통계가 해외보다 나은 점도 있다.
한국은 사회보험 가입률, 서면 근로계약 비율, 노조 가입 가능 여부까지 근로형태별로 해마다 촘촘히 공표한다.
중복을 '비정규성이 강한 순서'로 걷어내는 보정도 한다.
덕분에 비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 36.5%, 건강보험 53.0%, 고용보험 54.0%처럼 정규직(각각 88.6%·95.7%·93.0%)과의 격차가 숫자로 그대로 드러난다.
문제를 가리지 않고 재는 자료라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번 결과의 세부 자료(마이크로데이터)는 다음 달 MDIS를 통해 공개된다.
남는 질문은 분류 쪽에 있다.
시간제까지 묶은 '비정규직 38.5%'라는 한 칸을, 고령 단시간 일자리가 빠르게 느는 지금도 그대로 둘 것인지.
해외처럼 한시·시간제·파견을 나눠 보여줄 것인지.
같은 달 통계가 기준에 따라 38.5%도 되고 28.2%도 되는 상황에서, 어떤 숫자로 정책을 설계할지 정부가 먼저 답해야 한다.
취재에 참고한 자료
이 기사는 국가데이터처 '202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2026년 10월 21일 공표)의 수치를 바탕으로 했다.
해외 제도는 1차 출처로 확인했다.
OECD '임시직(Temporary employment)' 지표의 정의, EU 기간제노동지침(1999/70/EC)·시간제노동지침(97/81/EC)·파견노동지침(2008/104/EC)이 2026년 현재 유효한지는 EUR-Lex와 유로스타트 통계설명 자료로 확인했다.
일본 수치는 총무성 통계국 노동력조사 용어해설과 2025년 평균 결과, 후생노동성의 '같은 일 같은 임금' 및 2026년 10월 개정 안내로 확인했다.
독일은 연방노동사회부의 2026년 최저임금 고시, 미니잡센터의 2026년 기준액(603유로)과 2분기 통계, 연방통계청 자료, 기간제법(TzBfG) 제14조로 확인했다.
스페인은 관보(BOE)의 왕령 32/2021과 유로스타트 한시고용 통계로 확인했다.
다만 나라마다 '비정규'를 재는 기준(계약 특성·직장 호칭·계약 종류)과 집계 단위가 달라, 각국의 비중을 한 줄에 세워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본문의 OECD 기준 수치와 국내 기준 수치(38.5%)는 정의가 서로 다름을 밝힌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