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전남 신안 앞바다에 고정식 해상풍력 단지를 세우려는 한 사업자가 있다고 하자.

발전사업 허가는 몇 해 전에 받았다.

그런데 공유수면 점용 허가부터 해양환경영향평가, 어업 피해 협의까지 거쳐야 할 부처가 열 곳 가까이 된다.

그렇게 입지와 인허가를 스스로 끌고 온 사업자가, 10월 30일 아침 또 하나의 관문 앞에 선다.

발전 단가를 써내는 경쟁입찰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오전 9시 한국에너지공단 누리집에 2026년 하반기 해상풍력 고정가격계약 경쟁입찰을 공고했다.

물량은 2,200MW 안팎이다.

고정식 1,700MW(이 가운데 공공주도형 300MW)와 부유식 500MW로 나뉜다.

상반기 1.8GW와 합치면 올해 입찰 시장은 4GW가 된다.

정부는 이를 두고 ‘해외 해상풍력 선도국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숫자만 보면 그렇다.

다만 영국·독일·일본의 입찰은 한국과 출발선이 다르다.

그 나라들에선 정부나 공공기관이 ‘바다의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지을지를 먼저 정해 놓고, 사업자에게는 가격만 겨루게 한다.

한국은 그 앞단을 오랫동안 사업자에게 맡겨 왔다.

같은 ‘경쟁입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경쟁이 시작되는 지점이 다르다.

상한가격은 상반기보다 조금 내렸다

이번 입찰의 상한가격은 고정식 168.937원/kWh, 부유식 174.003원/kWh다.

상반기보다 각각 1.34%, 0.63% 낮아졌다.

정부는 국내외 균등화발전비용(LCOE) 변동률 전망치와 환율, 입찰 경쟁률을 두루 따져 조정했다고 밝혔다.

트랙은 상반기와 같이 고정식 일반, 고정식 공공, 부유식 일반 세 갈래로 열린다.

물량을 키운 배경에는 6월 발표한 ‘해상풍력 중장기 입찰 로드맵’이 있다. 2026년부터 2035년까지 55GW를 입찰에 부치고, 올해부터 해마다 4GW 이상을 공고한다는 계획이다.

예년 입찰 물량은 2022년 0.55GW, 2023·2024년 각 1.5GW, 2025년 1.25GW 수준이었다.

올해 한 번에 4GW로 뛰는 셈이다.

계약 기간은 20년이다.

정부는 차기 입찰에서 이를 25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고 했다.

김성환 장관도 국정감사에서 계약 기간을 늘리면 발전 단가를 낮출 여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한국에서 실제 가동 중인 해상풍력 설비는 2025년 말 기준 0.35GW 안팎에 그친다.

입찰 물량과 현실의 격차가 크다.

영국에선 ‘어디에 지을지’를 왕실자산관리청이 먼저 정한다

영국은 해저 바닥의 주인이 사실상 하나다.

왕실자산관리청(크라운 에스테이트)과 스코틀랜드 왕실자산관리청이 해저를 관리한다.

이들은 공간 분석과 이해관계자 협의를 거쳐 ‘개발에 가장 적합한 구역’을 추려 임대 입찰에 부친다. 4차 임대(라운드4)에서는 도거뱅크 등 네 개 입찰 구역을 미리 그어 놓았고, 스코틀랜드의 스코트윈드는 정부의 해양공간계획 안에서 구역을 떼어 내줬다.

사업자는 그렇게 정해진 자리를 놓고 가격을 겨룬다.

가격 경쟁의 틀은 차액계약(CfD)이다.

시장가격이 계약가격보다 낮으면 정부가 차액을 메워 주고, 높으면 사업자가 차액을 돌려주는 양방향 구조다.

올해 1월 발표된 7차 배정(AR7)에서 고정식 상한가는 113파운드/MWh, 부유식은 271파운드/MWh였다(2024년 가격 기준).

계약 기간은 이번 라운드부터 15년에서 20년으로 늘었다.

바다에서 뭍까지 잇는 송전 설비는 사업자가 지은 뒤 별도 송전사업자(OFTO)에 넘긴다.

독일은 연방기관이 바람과 지반을 조사한 뒤 경매에 부친다

독일은 한발 더 들어간다.

연방해사청(BSH)이 입찰 전에 해당 해역의 바람과 지반, 해양환경을 미리 조사한다.

이렇게 ‘사전조사된 부지’는 연방망청(BNetzA)이 경매에 부치는데, 보조금을 가장 적게 요구하는 순으로 내려가다 0센트에 이르면, 이제는 사업자가 ‘부지 값을 얼마나 내겠느냐’를 써내는 역경매로 넘어간다.

이 방식으로 2023년 126억 유로, 2024년 약 30억 유로가 걷혔다.

사전조사를 거치지 않은 부지의 상한가격은 6.2센트/kWh, 지원 기간은 20년이다.

송전 설비는 테넷 등 송전사업자가 짓는다.

그런데 이 구조가 흔들렸다.

지난해 8월 북해의 2,500MW 부지 경매에 응찰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독일 해상풍력 경매 사상 처음이었다.

부지 값 부담이 과도해 사업 채산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독일 정부는 올해 9월 3일 양방향 차액계약을 도입하고 운영 기간을 35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10월 8일 연방하원 첫 심의를 거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아직 확정된 제도는 아니다.

일본은 정부가 ‘촉진구역’을 찍고 어민과 먼저 합의한다

일본은 2019년 ‘재생에너지 해역이용법’을 만들었다.

정부가 바다를 살펴 ‘촉진구역’을 지정하는데, 그 전에 국가와 지자체, 어업단체가 참여하는 협의회를 꾸려 지역과 먼저 합의한다.

바다를 쓰는 점용 기간은 최장 30년, 발전 지원 기간은 20년이다.

가격은 공급가격과 사업 실현성을 함께 평가해 사업자를 고른다.

2021년 1차 입찰에서 미쓰비시상사 컨소시엄이 세 구역을 모두 11.99~16.49엔/kWh의 낮은 가격으로 쓸어갔다. 2024년 12월 발표된 3차 입찰에서는 상한가격이 18엔/kWh였고, 아오모리·야마가타 구역을 각각 제라와 마루베니 계열이 가져갔다.

그런데 응찰자 모두가 프리미엄 없는 3엔 수준을 써내 가격으로는 변별이 안 됐다.

설상가상 지난해 8월 미쓰비시가 1차 입찰 세 구역에서 모두 손을 뗐다.

공사비 급등이 이유였다.

약 1.7GW가 공중에 떴다.

일본은 올해 6월 입찰 규칙을 뜯어고쳤다.

공급가격에 하한선을 둬, 하한에 맞추면 만점을 주고 그 아래로 내려가도 추가 점수는 주지 않게 했다.

최저가로만 치닫던 경쟁을 멈춘 것이다.

가격과 사업 실현성의 배점도 120 대 120으로 맞췄다.

올해 4월부터는 영해를 넘어 배타적경제수역(EEZ)에도 풍력을 지을 수 있게 법을 고쳐 시행 중이다.

세 나라 모두 ‘최저가 경쟁’에서 한발씩 물러서고 있다

흐름은 한 방향이다.

독일은 응찰 0건을 겪고 차액계약으로 돌아섰고, 일본은 1위 사업자의 철수를 보고 가격 하한선을 깔았다.

영국은 계약 기간을 15년에서 20년으로 늘리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낙찰가를 따로 매기며, 친환경 공급망에 추가 보상을 얹는 ‘클린 인더스트리 보너스’를 더했다.

공통점은 가격을 더 짜내기보다 사업자의 수익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쪽이다.

최저가 경쟁이 사업을 좌초시킨 경험에서 나온 방향 전환이다.

한국은 이번에 상한가격을 상반기보다 내렸다.

동시에 계약 기간을 25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한다.

수익 기간을 늘려 단가를 낮춘다는 발상은 해외의 ‘기간 연장’ 흐름과 맞닿아 있다. 25년이면 영국이 올해 늘린 20년보다도 길다.

그 점은 한국안의 강점일 수 있다.

다만 공사비가 오르는 국면에서 상한가격을 깎는 선택은, 독일과 일본이 데인 바로 그 지렛대이기도 하다.

한국의 토대는 이제 막 깔리기 시작했다

앞선 나라들의 입찰이 ‘정부가 자리를 정해 놓고 가격만 경쟁’이라면, 한국은 그 자리 찾기를 사업자에게 맡겨 왔다.

바뀌는 중이다.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해 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3월 26일 시행됐다.

정부가 예비지구와 발전지구를 지정하는 계획입지 방식이다.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가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발전지구 안에서는 28개 법률의 인허가가 의제 처리된다.

정부는 사업 준비 기간이 71개월에서 31개월로 줄 것으로 본다.

문제는 시차다.

계획입지에 기반한 ‘발전지구 경쟁입찰’은 2029년 하반기에야 처음 열린다.

오늘 공고된 하반기 입찰은 여전히 옛 방식, 곧 사업자가 입지를 직접 들고 오는 고정가격계약 트랙이다.

계통도 과도기다.

한전이 2GW급 이상 대규모 단지의 공동접속설비를 선투자로 지어 주는 방식으로 옮겨 가고 있지만, 그간 사업자들은 저마다 송전선을 끌어와야 했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다.

바다는 좁고 어업 밀도가 높다.

영국의 왕실자산관리청처럼 해저를 한 손에 쥔 관리자가 없었고, 인허가는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니 4GW라는 ‘선도국 수준’ 물량은, 선도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깔아 둔 토대 위가 아니라, 토대를 이제 막 까는 나라에서 먼저 나온 숫자다.

공고문은 한국에너지공단 누리집에 올라 있다.

남은 결정은 몇 가지다.

계약 기간을 25년으로 늘릴지는 차기 입찰에서 가려진다.

계획입지에 따른 발전지구 입찰은 2029년에 시작된다.

그때까지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입지와 계통, 점용을 정부가 책임지는 토대와, 해마다 4GW씩 쏟아내는 입찰 물량의 속도가 과연 맞물려 돌아갈 것인가.

취재에 참고한 자료

기후에너지환경부 보도참고자료 ‘2026년도 하반기 해상풍력 경쟁입찰 공고’(2026.10.30)와 6월 발표된 해상풍력 중장기 입찰 로드맵 관련 보도,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DESNZ)의 차액계약 7차 배정 결과(2026.1.14)와 제도 연례 보고서(2025.12.17), 왕실자산관리청의 라운드4 입찰구역 자료와 스코틀랜드 왕실자산관리청의 스코트윈드 자료, 독일 연방해사청(BSH)의 부지 사전조사 안내와 연방망청(BNetzA) 경매 보도자료, 독일 연방정부의 해상풍력법 개정안 의결(2026.9.3), 일본 경제산업성·국토교통성의 3차 공모 결과(2024.12.24)와 새 공모제도 자료(2026.1), 환경성의 EEZ 개정법안 자료,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 2025 보고서를 확인했다.

나라마다 통화와 가격 산정 단위, 지원 방식(차액계약·시장프리미엄·고정가격)이 서로 달라 상한가격의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설비 용량도 중국·영국·독일은 2024년 말, 한국은 2025년 말 기준이어서 시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