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성수동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
입사 1년 차 개발자가 밤 열 시에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고 하자.
마감은 밀렸고, 팀장은 “조금만 더”라고 했다.
그렇게 쌓인 야근은 다음 달 급여명세서에 찍히지 않는다.
연장·야간수당 칸이 비어 있다.
이른바 '공짜 야근'이다.
고용노동부가 11월 3일부터 바로 이런 사업장을 겨냥한 감독에 들어갔다.
'2026년 하반기 장시간 노동 기획감독', 전국 100곳이 대상이다.
정보통신업,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처럼 청년이 많이 일하는 업종을 골랐다.
지난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성수동 일대 청년들의 장시간 노동과 수당 미지급이 도마에 오른 터라, 성동구 소재 사업장을 집중 점검한다.
감독의 축은 둘이다.
청년 다수고용 사업장에서 근로시간 한도와 수당 지급이 지켜지는지가 하나.
특별연장근로를 반복해 쓰는 사업장에서 노동자 건강보호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가 다른 하나다.
뒤의 '특별연장근로'라는 네 글자가, 이 기사가 해외 제도와 나란히 놓아 보려는 지점이다.

한국은 '주 52시간'이라는 한 줄에 거의 모든 걸 건다
한국의 노동시간 규칙은 단순하다.
법정근로는 1주 40시간, 하루 8시간(근로기준법 제50조).
여기에 노사가 합의하면 1주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제53조 제1항).
둘을 더한 주 52시간이 상한이다.
연장·야간·휴일근로에는 통상임금의 50%를 더 얹어 줘야 한다(제56조).
'공짜 야근'은 바로 이 50%를, 혹은 수당 자체를 주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52시간을 넘기는 길도 법에 있다.
특별연장근로다.
재해·재난, 돌발적 설비 고장, 업무량의 대폭 증가 같은 사정이 있을 때 쓴다.
다만 조건이 까다롭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노동자 본인의 동의도 있어야 한다(제53조 제4항).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한 경우 1년에 90일까지만 허용된다.
예외를 여는 열쇠를 정부가 쥐고 있는 구조다.
일본은 '월 100시간'을 노사 합의서에 적어 감독서에 낸다
일본도 법정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2019년 노동방식 개혁으로 초과근로에 상한을 뒀다.
원칙은 월 45시간, 연 360시간.
그런데 노사가 '특별조항'을 두면 더 늘릴 수 있다.
연 720시간까지, 한 달은 휴일근로를 포함해 100시간 미만, 2~6개월 평균은 80시간 이내, 45시간을 넘는 달은 1년에 여섯 번까지다(후생노동성).
이 예외를 여는 열쇠가 한국과 다르다.
일본은 '36협정'이라 부르는 노사 합의서를 쓴다.
노동기준법 제36조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업장에서 노동자 과반수 대표와 협정을 맺고, 그 문서를 관할 노동기준감독서에 신고한다.
정부의 허가가 아니라 현장의 합의가 근거다.
할증률은 초과근로 25% 이상, 한 달 60시간을 넘는 분부터는 50% 이상이고, 이 50% 규정은 2023년 4월부터 중소기업에도 적용됐다.
건설업·운전기사·의사에게는 2024년 4월부터 상한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독일은 '하루 8시간'을 재고, 늘리고 줄이는 건 노사협약이 쥔다
독일은 상한을 하루 단위로 센다.
노동시간법(ArbZG) 제3조는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묶되, 6개월 또는 24주 평균이 8시간을 넘지 않으면 하루 10시간까지 늘릴 수 있게 했다.
'하루(werktäglich)'를 기준으로 하니 주 6일 환산으로 48시간이다.
상위의 EU 노동시간지침(2003/88/EC)도 초과근로를 포함해 평균 주 48시간을 원칙 4개월 평균으로 제한한다.
한국처럼 한 주를 딱 끊어 재지 않고 몇 달을 평균 낸다.
유연화의 열쇠는 역시 현장에 있다.
제7조는 단체협약(Tarifvertrag)이나 그에 근거한 사업장협정으로 하루 한도와 휴게, 정산 기간을 달리 정할 수 있게 한다.
상한을 흔드는 결정을 노사가 쥔 셈이다.
다만 최종 울타리인 '12개월 평균 주 48시간'은 남는다. 2022년 연방노동법원이 노동시간 기록 의무를 확인한 뒤, 정부는 하루 상한을 주 단위 상한으로 바꾸는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2026년 11월 현재 법안 단계이고 통과되지 않았다.
프랑스는 '주 35시간'을 기준선으로 두고 나머지는 협약에 맡긴다
프랑스의 35시간은 상한이 아니라 기준선이다.
이 선을 넘으면 초과근로 수당이 붙는다(노동법전 L3121-27).
진짜 상한은 따로 있다.
하루 10시간, 한 주 최대 48시간, 12주 평균 44시간이다.
초과근로 할증은 기본 25%(처음 8시간)와 50%지만, 기업·산별 협약이 정하면 최저 10%까지 낮출 수 있다(L3121-33·36).
연간 초과근로 쿼터도 기본값은 220시간이되 협약으로 바꾼다(D3121-24).
2016년 노동법 개정과 2017년 마크롱 명령 이후, 프랑스는 노동시간의 상당 부분을 기업 단위 협약에 맡기는 쪽으로 갔다.
자율성이 큰 간부에게는 하루·주 시간 대신 '연 218일'로 일수를 세는 포르페 주르(forfait jours) 방식도 협약으로 둘 수 있다(L3121-64).
여기서도 결정의 무대는 협약이다.
세 나라의 유연화는 '현장에 상대가 있다'를 전제한다
일본의 36협정에는 노동자 과반수 대표가, 독일의 노동시간 조정에는 직장평의회(Betriebsrat)와 산별노조가, 프랑스의 협약에는 기업·산별 노사가 상대로 앉는다.
상한을 늘리는 합의가 성립하려면 그 자리에 노동자 쪽을 대표해 서명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이 제도들은 그 '누군가'가 웬만한 일터에 있다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저변의 크기는 단체협약 적용률로 드러난다.
프랑스는 98%, 독일은 49%다(OECD·2024).
독일은 노조 가입과 별개로 직장평의회가 전체 노동자의 41%를 덮는다(IAB·2023).
일본은 기업별 노조 구조여서 적용률이 15.2%로 조직률과 엇비슷하다.

노조 조직률만 보면 네 나라는 다 10%대다.
일본 16.1%(2024), 독일 14.1%(2024), 프랑스 10.1%(2019).
한국도 13.0%(2024)로 그 무리 안에 있다.
프랑스가 특이하다.
조직률은 가장 낮은데 협약 적용률은 98%로 가장 높다.
정부가 산별 협약을 업계 전체로 확장 적용하는 장치를 둔 덕이다.
조직률이 아니라 '협약을 퍼뜨리는 제도'가 저변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장관 인가'로 그 빈자리를 메운다
한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16.3%(OECD·2023)로 낮다.
노조 조직률로 보면 공공부문을 빼면 민간은 9.8%, 노동자 30인 미만 사업장은 0.1%까지 떨어진다(고용노동부·2024년 조직현황).
이번 감독이 겨냥한 정보통신·숙박음식·도소매의 작은 일터가 바로 그 0.1%의 세계다.
상한을 늘리고 줄이는 합의를 맡길 상대가 현장에 거의 없다.
그 빈자리를 한국은 두 가지로 메운다.
하나는 장관 인가다.
노사 합의서 대신 정부가 특별연장근로를 건건이 허가한다.
다른 하나는 근로감독이다.
현장에 상대가 없으니 감독관이 들어가 수당과 시간을 따진다.
정부는 2025년 근로감독관을 700명 늘렸고, 2026년에도 1,000명 증원을 예고했다.
이번 100곳 감독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 쪽이 더 나은 지점도 있다.
초과근로 할증 50%는 일본의 25%보다 높고, 프랑스처럼 협약으로 10%까지 깎이지 않는다.
주 52시간이라는 한 줄은 노조가 없는 노동자도 선을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다.
대신 한국은 그 선을 한 주 단위로만 긋는다.
몇 달을 평균 내 유연하게 쓰려면 기록과 신뢰를 받쳐 줄 제도가 필요한데, 독일이 노동시간 기록 의무부터 손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2015년 2,058시간에서 2025년 1,846시간으로 꾸준히 줄었지만, 여전히 OECD 평균(2025년 약 1,736시간)보다 100시간가량 길다.
감독 결과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확인되면 시정지시, 과태료, 사법처리로 이어진다.
남은 질문은 제도의 결을 향한다.
업무량 폭증을 이유로 한 특별연장근로를 해마다 90일씩 반복해 인가하는 것이 과연 '특별'한가.
현장에 합의할 상대가 없는 일터에서 정부 인가와 감독만으로 장시간 노동을 어디까지 막을 수 있나.
주 52시간의 예외를 넓히려던 반도체특별법 조항이 올해 1월 본회의 문턱에서 빠진 뒤, 그 논의는 아직 국회에 남아 있다.
취재에 참고한 자료
고용노동부의 '2026년 하반기 장시간 노동 기획감독' 보도자료(2026-11-03)와 근로기준법 제50·53·56조(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로 한국 제도를 정리했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의 초과근로 상한·36협정·할증임금 안내 페이지를, 독일은 노동시간법(ArbZG) 제3·5·7조 원문과 EU 노동시간지침(2003/88/EC) 조문을, 프랑스는 노동법전 L3121조 조문과 공공서비스 안내(service-public.gouv.fr)를 확인했다.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은 OECD/AIAS ICTWSS(2025년 갱신) 국가자료, 고용노동부 2024년 전국노동조합 조직현황, 일본 후생노동성 노동조합 기초조사(2024), 독일 IAB 사업체패널(2023)에서 가져왔다.
나라마다 상한을 재는 단위(한국은 주, 일본은 월·연, 독일은 하루, 프랑스는 주·연)와 수당·협약 체계가 달라, 수치를 한 줄에 세워도 그대로 대소를 가릴 수는 없다.
조직률·적용률은 집계 연도가 2019~2024년으로 나라마다 다르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