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DIEN] 기초과학연구원 양자나노과학 연구단과 독일 막스플랑크 다학제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이 금속 촉매 표면에서 분자가 결합하는 지점으로부터 수 나노미터 떨어진 원자 구조 역시 화학 결합의 세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BS 기초과학연구단 지원 사업을 통해 수행되었으며, 그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10월 30일 오전 3시 게재됐다.
금속 촉매는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핵심 물질로, 화학제품 생산부터 연료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된다. 약 100년 전 개발된 암모니아 합성 기술이 대표적인 예다. 이 기술은 금속 촉매를 이용해 질소와 수소로부터 비료의 주원료인 암모니아를 대량 생산하며 현대 농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금속 촉매를 이용한 화학 반응은 반응물인 분자가 금속 표면에 달라붙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이때 분자와 금속 사이의 결합 세기는 화학 반응이 얼마나 원활하게 진행될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분자가 금속 표면에 어떤 원리로 결합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촉매의 성능을 예측하고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기존에는 분자와 금속 사이의 화학 결합이 주로 분자가 직접 접촉하는 주변 원자들과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다. 금속 표면에 흡착된 원자나 분자가 멀리 떨어진 영역의 전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러한 현상은 주로 극저온에서 관찰되었고 실제 촉매 반응에서 화학 결합 세기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러한 통념과 달리, 장거리 전자 효과가 금속 촉매 표면에서 분자와 금속 사이의 결합 세기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원자들이 층층이 쌓여 계단 모양을 이루는 백금 표면을 활용했다. 서로 다른 간격의 원자계단을 가진 백금 표면을 제작하고,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일산화질소 분자가 금속과 결합하는 세기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비교했다.
실험 결과, 분자가 결합하는 지점의 구조가 유사하더라도 이웃한 계단까지의 거리에 따라 결합 세기가 달라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결합 에너지 차이는 최대 약 0.2 전자볼트에 달했으며, 이는 결합의 안정성에 상당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수준이다. 장거리 영향이 나타나는 특성 거리는 분자 종류에 따라 약 4~7 나노미터로, 이는 원자 수십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정도의 거리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도 규명했다. 금속 내부에는 수많은 전자가 특정 원자에 고정되지 않고 넓게 퍼져 있어 마치 거대한 ‘전자 바다’를 형성한다. 분자가 금속 표면에 결합하면, 분자의 전자와 금속의 전자 바다가 상호작용하면서 멀리 떨어진 원자 구조의 영향까지 받게 된다. 즉, 분자와 금속 사이의 화학 결합은 넓은 영역에 걸친 전자적 상호작용에 의해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분자마다 장거리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화학의 ‘분자 궤도’와 물리학의 ‘전자띠’ 개념을 통합한 ‘프런티어 오비탈-밴드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분자마다 고유한 전자 상태의 특성이 금속 내부의 서로 다른 전자 상태와 상호작용하며, 이에 따라 동일한 금속 표면에서도 분자의 종류에 따라 장거리 영향이 달라짐을 설명한다. 분자 궤도는 분자 내 전자의 에너지와 공간적 분포를 나타내 화학 결합 및 반응 특성을 이해하는 데 활용되며, 전자띠는 고체를 이루는 원자들의 전자 상태가 결합해 형성하는 에너지 영역으로 금속의 전기적 특성과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플로리안 니츠 막스플랑크 다학제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표면 화학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자를 중심으로 보는 화학적 관점과 금속의 전자적 특성을 다루는 물리학적 관점을 통합해야 한다”며, “이번 연구는 막스플랑크 연구진의 정밀한 금속 표면 측정 기술과 IBS 연구진의 심도 있는 고체물리학적 분석이 결합된 결과”라고 연구의 의의를 강조했다.
드미트리 보로딘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 그룹리더는 “과거 촉매 개발은 오랜 실험과 시행착오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화학 반응의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원하는 특성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번 연구가 화학 결합에 대한 이해를 한층 넓혀, 보다 정교한 계산과 효율적인 촉매 설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복잡한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 간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융합하는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며, “우리 연구자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연구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함께 도전적인 연구에 나설 수 있도록 국제공동연구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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