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DIEN] 조선시대 도성 밖 마을에서 시작해 근현대 도시를 거쳐 이제는 청년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난 중구 신당동의 역사와 문화가 한 권의 보고서에 담겼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25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 ‘신당동:··Hip’을 발간하며, 최근 ‘힙당동’이라는 별칭으로 주목받는 신당동의 다채로운 얼굴을 조명했다.
이 보고서는 최근 감성적인 카페와 소품숍, 독창적인 디자인 작업실이 들어서며 청년 세대의 새로운 성지로 떠오른 신당동의 매력이 단순히 최신 유행에만 기인하지 않음을 밝힌다. 신당동은 조선시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였던 공간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며 현대적 도시 구조를 확립, 서울의 독특한 동네로 진화해 온 궤적을 촘촘히 되짚는다.
‘신당동’이라는 이름 자체에 ‘신을 모시는 집’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조선시대 광희문 밖은 도성 내 시신이 나가는 통로이자 병자를 구휼하던 ‘동활인서’가 있던 곳으로, 도성 안 거주가 금지된 무당들이 집단 마을을 이루며 치유와 위로의 공간으로서 기원을 새겼다. 갑오개혁 이후 ‘신’ 자가 바뀌었음에도 ‘무당개울’, ‘무당다리’ 등의 지명에는 이 땅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는 인구 과밀 문제 해결을 위해 신당동 일대에 교외 주택지 ‘문화촌’을 조성하며 근대적 주거지로 재편했다. 개발 이전에는 구릉지와 숲, 묘지와 화장장이 뒤섞인 지역이었으나, 대규모 묘지 이장과 격자형 도로망 확충으로 개발 기반이 마련됐다. 1930년대 조성된 ‘문화촌’은 당대 최신 주거 트렌드인 ‘전원도시’ 이념을 담아 일본인과 조선인 신흥 중산층을 위한 세련된 주거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광복과 6·25 전쟁은 신당동을 다시 변화시켰다. 해외 귀환 동포와 전쟁 피란민들이 몰려들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난개발 위기 속에서도 ‘신당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거치며 현대적 가로망과 주거 기반을 다졌다. 이때 다져진 도시의 뼈대는 현재까지 신당동의 골격으로 남아 있다.
보고서는 ‘힙당동’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네 곳의 특화거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곡물상이 밀집했던 ‘싸전거리’, 마복림 할머니가 시작해 신당동의 대명사가 된 ‘떡볶이거리’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판자촌 시절 주민들의 삶이 담긴 ‘개미골목’, 19세기 말 철공소 밀집 지역이었던 ‘철공소거리’도 함께 담아냈다.
특히 이번 조사는 아날로그와 도제식 교육에 머물렀던 신당동 봉제·의류 가공 산업에서 기술 혁신을 통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았다. 로제패턴실 여혜은 대표는 “패턴업의 미래를 위해 3D와 AI를 연결해 활용하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라며 현장의 변화를 전했다.
최근 신당동에는 서양권 관광객의 방문도 늘고 있다. 떡볶이거리의 ‘마복림 할머니집’ 관계자는 해외 콘텐츠를 통해 신당동이 알려지면서 서양권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신당동의 압도적인 접근성이 자리하고 있다.
뮤지컬 펍 ‘쇼플릭스’ 곽현걸 대표는 동대문과 가까운 입지가 외국인 접근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밝혔으며, 패션 브랜드 ‘언더마이카’ 최승혁 대표 역시 편리한 지하철 교통망과 동대문 인접성이 다양한 국적의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주신당’ 장지호 대표는 평일 방문객의 약 40%가 외국인이라며, 한국 십이지신 콘셉트 공간이 서양인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신당동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극적인 변화상을 단 하나의 동네에 압축해 놓은 거대한 박물관”이라며, 이번 보고서 발간을 통해 신당동 골목길 이면에 쌓인 깊은 역사적 가치를 온전히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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